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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예산 따내고는, 결국 집행 0원…이런 '쪽지예산' 수두룩 [쪽지예산 OUT]

중앙일보

입력

“분당ㆍ판교의 교통혁명을 위한 2021년도 예산안 890억원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021년 12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1회 정기국회 제12차 본회의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새해 예산안 상정을 앞두고 정회를 선포한 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12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1회 정기국회 제12차 본회의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새해 예산안 상정을 앞두고 정회를 선포한 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2월 당시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현재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SNS를 통해 지역구(경기 성남 분당갑) 예산 확보를 적극 홍보했다. 구체적으로 ‘월곶-판교 복선전철 780억원 확보’와 ‘수서-광주 복선전철 110억원 확보’를 성과로 내세웠다.

그러나 김 수석이 당시 ‘교통혁명’으로 홍보한 지역 예산 중 ‘수서-광주 복선전철’ 예산은 지난해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2021년도 국회 국토위 결산 예비심사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예산 110억원의 집행률은 0%였다. 보고서는 해당 사업에 대해 “국토부가 기본계획 수립 절차가 완료되지 않아 사업비 집행이 불가능함에도 출연금 예산을 전액 교부한 건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광주송정-순천 전철화’를 목적으로 편성된 예산 297억원도 같은 해 전액 미집행됐다. 당초 정부가 187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당시 민주당 호남 지역 의원들의 요구로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100억원 이상이 증액됐다. 또한 남부내륙철도(406억원), 대구산업선철도건설(164억원), 석문산단인입철도(78억원), 충북선고속화(154억원) 사업 등 총 6개 일반철도건설 예산이 지난해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국민의힘 소속 경기 성남 분당갑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2020년 12월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당시 김 수석은 지역구 사업 예산으로 890억원을 확보했다고 홍보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블로그 캡처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국민의힘 소속 경기 성남 분당갑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2020년 12월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당시 김 수석은 지역구 사업 예산으로 890억원을 확보했다고 홍보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블로그 캡처

‘SOC 끼워넣기’ 부작용…매년 미집행 예산 수두룩

매년 수조원까지 발생하는 미집행 예산은 국회의 관행인 ‘SOC(사회기반시설) 예산 끼워넣기’가 낳은 부작용으로 꼽힌다.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민원 사업을 이른바 ‘쪽지예산’ 형태로 무리하게 증액하곤 했다. 여당 관계자는 “평소에 지역에 자주 못 가더라도 연말에 ‘예산을 이만큼 통과시켰다’고 홍보하면 지역주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지역구 의원이 예산 정국이 다가오면 SOC 사업 증액에 매진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증액된 사업 중 상당수가 졸속사업이라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평가다. 2021년도 국토위 결산 예비심사보고서는 그해 예산에 포함된 SOC사업 상당수에 대해 “성과를 과다 측정해 교부한 예산”이라거나 “연례적으로 집행이 부진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도 일반 국도 건설 사업 134개 중 예산액 대비 집행률이 70% 미만인 사업은 41개였고, 이중 20개는 집행률이 30%에 미달했다. 국가지원지방도 건설 사업의 경우 60개 중에서 34개 사업이 예산액 대비 집행률이 50% 미만이었다.

“대륙 길목”이라던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졸속사업 감사까지

남북 철도 공동조사에 나섰던 우리측 열차가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북은 지난 30일부터 18일 간 경의선 개성-신의주 구간(약 400km)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약 800km)을 공동으로 조사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철도 공동조사에 나섰던 우리측 열차가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북은 지난 30일부터 18일 간 경의선 개성-신의주 구간(약 400km)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약 800km)을 공동으로 조사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경우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이 미집행된 끝에 최근 감사원 감사까지 받게 됐다. 해당 사업은 2018년 4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한 남북 철도ㆍ도로 연결 이행을 위해 민주당에서 적극 추진했던 것으로, 경기 파주 월롱면에서 장단면 도라산역까지 10.75㎞를 잇는 사업이다. 2019년도 정부 제출 예산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후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되면서 예산 92억원이 신규 반영됐다. 당시 민주당에선 “서울-평양 고속도로 시대를 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국회 국토위 민주당 측 간사 윤관석 의원), “파주가 대륙으로 뚫리는 길목의 중심이 됐다”(경기 파주갑 윤후덕 의원)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후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을 놓고 시민단체와 정부가 갈등을 빚으면서 매년 편성된 예산 대부분이 집행되지 않았다. 2021년도 국토위 결산 예비심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도 예산안에 관련 예산 302억원이 반영됐지만 이중 12.9%만 집행됐다. 2021년도 예산안에 포함된 관련 예산 341억원 가운데선 1.5%인 5억원만 집행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심사 과정에서)중간에 진입하는 예산은 사업 타당성이 낮아 불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집행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지출하는 건 더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중간에 진입하는 SOC 예산은 증액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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