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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는] 전용 상영관 하나없는 부산영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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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매년 가을 부산에선 '영화의 바다'에 빠져, 영화예술을 애호하는 국내외 관객과 배우.감독.비평가 등 영화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하는 축제의 시간을 갖는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PIFF)는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가장 역동적이고 활기찬 영화제로 국내외에 인식되고 있으며, 글로벌 시대에 문화의 세계성과 지역성을 잘 조화시킨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는 북한 영화 7편을 포함해 61개국 2백43편의 작품이 초청.상영됐다. 83%의 좌석 점유율, 7백명에 가까운 해외 참가자들과 함께 5천3백여명의 게스트가 참여함으로써 규모 면에서도 역대 최고의 성과를 기록했다.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을 비롯한 해외 언론도 부산영화제가 홍콩영화제나 도쿄영화제 등 아시아의 선발 영화제들을 추월하고 있음을 인정했을 만큼 올해를 기점으로 안정궤도에 올라선 것으로 여겨진다.

영화는 사진술과 영사기의 발명 등 근대의 테크놀로지 혁명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기에 음악.미술.문학 등의 일반 장르에 비해 역사가 매우 짧다. 그러나 시공간을 아우르는 종합예술로서의 대중적 영향력과 문화적 소통효과 면에서의 막강한 위력은 타 장르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편으로는 할리우드의 메이저들을 중심으로 오락성이 강한 상업주의적 발전 역사를 지니기는 했지만 예술과 문화산업으로서 영화의 발전 가능성은 앞으로 무한히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산영화제에서도 1998년 설립돼 영화제와 함께 치러지는 일명 PPP(Pusan Promotion Plan)가 영화와 관객의 만남 자리를 넘어 아시아 영화산업의 통로와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6회째를 맞은 2003 PPP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 개발과 참석자들 간의 패널 토론을 통해 한국과 아시아의 우수한 영화들을 세계에 소개하고 관심을 유도함으로써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영화계의 한 축으로 도약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부산영화제가 이렇듯 급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한국 영화의 고성장과 함께 아시아 영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및 저명한 해외 게스트들의 참석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영화매체 자체가 갖는 문화적 영향력이다. 이에 따라 비엔날레 같은 국제적 미술전시 행사와 더불어 각국이 문화산업으로서의 영화제에 쏟는 관심과 지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전용 상영관 하나 없이 지난 8년간의 세월을 버텨온 부산영화제의 성공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하겠다.

그동안 부산영화제는 남포동의 극장가를 중심으로 행사를 치러 오면서 개최 시기를 일정하게 정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해마다 개최 기간이 들쭉날쭉하다는 것은 국제적 행사로서의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전용 공간을 확보하면 개최 시기가 일정해져 국제적 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외에 회의 시설과 사무 공간 등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업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베를린과 베니스.로테르담.로카르노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영화제들이 전용 공간을 확보, 원활한 행사 진행은 물론 평상시에는 공연 공간이나 각종 국제행사장으로 활용하면서 지역사회에서 풍부한 문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올해의 경우 해운대 지역을 행사 장소의 일부로 선정했으나 남포동 극장가와의 거리, 개최 장소의 분리에 따른 불편이 컸음은 물론이다. 지역 발전과 지방문화 육성을 위해 부산영화제의 전용 상영관 건립이 하루빨리 구체화되고 건축 설계에서도 국제 공모의 방식을 채택해 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었으면 한다.

백영제 동명정보대교수.조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