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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정규직 필기시험 합격 기념 놀다 올게” 딸의 마지막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은행원 정규직 필기시험 합격 기념으로 친구랑 놀러 가고 있어요.”
이태원 참사로 숨진 오모(23·여)씨가 지난 29일 오후 6시쯤 광주광역시에 사는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지난 2월 은행원으로 입사해 정규직 전환을 위한 공부를 하던 오씨는 필기시험 합격을 기념하기 위해 친구와 이태원으로 향했다가 생을 마감했다.

31일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에 이태원 참사 피해자 오모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황희규 기자

31일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에 이태원 참사 피해자 오모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황희규 기자

초교~고교 동창 단짝친구, 같은 장례식장 안치
31일 오전 오씨와 김모(23·여)씨 빈소가 차려진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 이곳에서 만난 유족들은 초등학교부터 단짝이었던 딸들이 외롭지 않게 같은 곳에 빈소를 마련했다고 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 딸들이 보낸 사진을 보던 유족들은 “갈 때도 같이 갔으니 하늘나라에서도 외롭지 않게 함께 보내주자”고 말했다.

단짝인 이들은 광주에서 공부를 마치고 상경해 오씨는 은행, 김씨는 백화점에 취업해 서울살이하고 있었다. 최근 오씨는 정규직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김씨는 직장에서 승진했다. 겹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태원 핼러윈 행사장을 찾았지만, 영원히 돌아올 수 없게 됐다.

혹시 내 딸도? 낯선 남자가 전화 받았다
김씨 부모는 지난 29일 뉴스 속보를 통해 참사 소식을 접했지만, 딸이 이태원에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음날 오전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낯선 남자가 받아 당황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이태원에서 주워서 보관 중이다”라고 했고, 아버지는 곧바로 서울로 달려가 낯선 남자를 만났다. “내 친구도 이태원에서 숨졌어요. 실종신고 먼저 해보세요”란 그의 말에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경찰은 딸의 사망 소식을 전해왔다.

오씨 아버지는 딸이 이태원에 간 사실을 알고 있어 참사 뉴스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수십통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자 집 근처 파출소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딸의 휴대폰 위치가 이태원인 것을 확인했다. 실종신고를 한 뒤 곧장 서울로 갔지만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딸을 만날 수 있었다.

30일 오후 광주 한 장례식장에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30일 오후 광주 한 장례식장에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다음 주에 내려온다던 딸, 휴가마다 광주 온 딸
오씨는 다음 주 면접시험을 치르고 광주로 내려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유족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의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렇게 예쁜 아이, 꽃다운 나이에”라고 말한 뒤 한참 동안 눈물을 삼켰다. “겨우 스물셋인데, 시집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많은 데 이렇게 가버려서 너무나도 허망할 뿐이다”고 했다.

휴가 때마다 광주를 찾던 김씨는 최근까지도 가족 모임에 참석해 친척들과 즐겁게 지냈다. 유족은 “지난달 생일이었던 딸이 용돈을 받고 즐거워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항상 밝았던 딸이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슬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광주 사망자 6명, 광주시청에 합동분향소 마련
이태원 참사 관련 광주 사망자는 남성 4명, 여성 3명 등 총 7명으로 집계됐다. 광주 거주자는 2명이며, 5명은 광주가 연고지이다. 이 중 5명이 90년대, 나머지 2명은 각각 80년대, 70년대 생으로 파악됐다. 광주시는 청사 내 1층에 합동분향소를 설치, 이날 오후 7시부터 조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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