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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년 걸렸다는 달 탄생, 알고보니 4시간 밖에 안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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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탄생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입니다. 참 의아하죠. 수억 광년 떨어진 블랙홀도 연구하는 시대에 달 탄생의 비밀도 못 풀었다니 말이죠.

[정글]

달의 탄생에 대한 가설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충돌론’이다. 45억년 전 원시 지구에 거대한 행성이 부딪혀서 달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사진 NASA, 영국 더럼대

달의 탄생에 대한 가설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충돌론’이다. 45억년 전 원시 지구에 거대한 행성이 부딪혀서 달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사진 NASA, 영국 더럼대

천문학자들이 가장 지지하는 가설은 이른바 ‘충돌론’입니다. 원시 지구와 다른 원시 행성의 충돌로 인해 달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영국 더럼대 연구진이 슈퍼컴퓨터와 은하 형성 연구에 사용된 모델로 매우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달은 지구와 충돌 뒤 불과 3시간 40분쯤 지나서 달이 형태를 갖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존 수만~수백만 년에 걸쳐 달이 서서히 형성됐다는 가설을 반박하는 결과입니다.

달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수많은 가설

18세기부터 달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가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첫 가설은 1796년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내놓습니다. 태양계가 생성될 당시 공간을 메운 ‘성간 물질’이 뭉쳐 달이 탄생했다는 것이죠. 달과 지구는 태양계가 만들어질 때 동시에 태어났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지구 지름의 4분의 1이나 되는 달의 크기를 설명하기 힘들었습니다.

라플라스의 설명에 반기를 든 건 저명한 진화론자 찰스 다윈의 아들 조지 다윈이었습니다. 다윈은 액체 불덩어리 상태의 지구가 빠르게 회전하다가 지구 적도 인근이 떨어져 나가서 달이 됐다고 1879년 주장했습니다. 달은 한때 지구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이죠. 거대한 태평양은 달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라는 주장도 그때 나왔습니다.

달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가설을 보여주는 그림. 달과 지구의 원소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 결과, 두 천체는 거의 일치하므로 둘은 매우 가까운 관계였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려면 매우 맹렬한 속도로 회전해야 한다. 하지만 지구의 회전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는 않다.

달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가설을 보여주는 그림. 달과 지구의 원소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 결과, 두 천체는 거의 일치하므로 둘은 매우 가까운 관계였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려면 매우 맹렬한 속도로 회전해야 한다. 하지만 지구의 회전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는 않다.

1900년대 들어서는 달이 지구 주위를 지나가다가 지구 중력에 포획됐다는 가설도 제기됐습니다. 달이 태양계 바깥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뒤 뒤늦게 지구의 위성이 됐다는 것이죠.

1946년에 이르러서야 달이 충돌의 결과라는 가설이 나옵니다. ‘원시 지구’에 화성 크기의 원시 행성 ‘테이아’가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튀어나온 파편이 뭉쳐 달이 됐다는 겁니다. 이 가설은 당시만 해도 아주 터무니없는 설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인류의 달 착륙, 달 탄생 기원의 비밀을 풀다

1969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한국 시각),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디뎠습니다. 이후 몇 차례 달 탐사가 이뤄지면서 인류는 1970년대 초반까지 달 표면 암석과 토양 샘플 382㎏을 지구로 가져왔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달의 토양과 암석을 분석하면서 인류는 달 기원의 비밀에 한발자국 더 다가갔다. 사진 NASA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달의 토양과 암석을 분석하면서 인류는 달 기원의 비밀에 한발자국 더 다가갔다. 사진 NASA

달의 암석과 토양은 수십 년에 걸쳐 자세히 분석됐습니다. 그 결과 모든 가설이 하나씩 폐기됐고, 원시 행성의 충돌로 달이 탄생했다는 가설만이 이제는 거의 정설이 됐습니다.

우선 달은 지구와 달리, 철처럼 무거운 원소의 비율이 높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지구와 달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형성됐다고 보기는 힘들죠.

또한 원시 지구의 자전 속도가 달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속도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달이 떨어져 나갈 정도가 되려면 지금보다 10배 가까이 빨라야 한다는 겁니다.

아폴로가 가져온 달의 암석 분석 결과도 흥미로웠습니다. 산소와 텅스텐 같은 원소의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해보니 달은 지구와 거의 흡사한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이 때문에 달이 머나먼 곳에서 지구 근처로 와 중력에 붙잡혔다는 가설도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원시 지구와 다른 행성의 충돌 때문에 달이 만들어졌다는 가설만이 남게 됐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있는데요. 그동안은 충돌 이후 파편이 뭉쳐져 달이 형성됐다고 설명해왔습니다. 수만 년에서 수백만년이 흐르면서 차츰 달의 형체를 갖췄다는 거죠. 그런데 파편이 뭉쳐서 지금만큼 거대한 크기와 빠른 공전 속도를 만들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죠.

과거 시뮬레이션에선 지구와 테이아의 충돌로 수많은 파편이 지구 주위에 흩뿌려진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최근 시뮬레이션 모델이 더 정밀해지면서 충돌 이후 모습도 확연히 달라졌다. 사진 Robin M. Canup

과거 시뮬레이션에선 지구와 테이아의 충돌로 수많은 파편이 지구 주위에 흩뿌려진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최근 시뮬레이션 모델이 더 정밀해지면서 충돌 이후 모습도 확연히 달라졌다. 사진 Robin M. Canup

때문에 달이 한 번의 거대한 충돌 때문이 아니라 여러 번 거듭된 충돌의 결과라는 이론까지 나왔습니다. 달의 탄생을 향한 인류의 사고 실험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죠.

초정밀 시뮬레이션 돌려봤더니… 

최근 들어 슈퍼컴퓨터 성능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유체역학과 중력의 효과를 고려한 모델이 발전하면서 시뮬레이션 정확도도 향상됐습니다.

과거 원시 지구와 원시 행성의 충돌은 100만개 입자 단위에서 시뮬레이션 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과 영국 더럼대 연구진의 연구에선 입자 1억개 이상 단위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입자 하나당 6경 ㎏ 정도로 설정했습니다. 롯데월드타워 8000만개를 뭉친 것과 같죠. 우주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하다지만 인간의 사고가 담기에는 지구의 크기가 무지막지합니다.

연구진은 은하와 행성 형성에 주로 사용되는 모델 ‘SWIFT’를 사용해 시뮬레이션했습니다. 당시 지구와 테이아의 표면 온도는 2000K(섭씨 1727도)였다고 합니다. 내부 온도는 이보다 더 높죠. 이 정도 온도에서 암석과 금속 대부분은 녹습니다. 즉 원시 지구와 테이아는 모두 액체 상태의 행성이었습니다.

원시 지구와 테이아는 45도 각도를 이루며 충돌합니다. 원시 지구는 현재 지구 질량의 87.7%이고 테이아는 13.3%죠. 연구진은 이를 기본으로 충돌 각도와 질량비를 조금씩 다르게 해 충돌시켰습니다.

시뮬레이션에서 테이아는 원시 지구와 충돌한 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박살이 납니다. 충돌 뒤 액체 상태의 파편들은 터미네이터의 액체금속 로봇처럼 다시 지구 중력에 이끌려 합쳐집니다. 지구는 테이아의 파편을 흡수해 기존보다 더 커지게 됩니다.

하지만 충돌 직후 길게 뻗으며 떨어져 나간 부분 중 꼬리 쪽 일부분은 지구 중력에 흡수되는 범위를 넘어 궤도를 형성합니다. 이 작은 부분은 지구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주변의 작은 파편들을 조금씩 흡수합니다.

바로 이 작은 덩어리가 달이 됐다는 거죠.

이번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달은 충돌 이후 수백만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차츰 형태를 이룬 게 아닙니다. 불과 3시간 40분이 지나서 형태가 보이고, 수십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안정된 궤도에 오릅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기존 모델은 지구와 달 암석의 동위원소 구성이 비슷하고 달의 각운동량의 특성을 동시에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시뮬레이션에선 달의 질량과 철 함량이 유사한 위성이 생성됐고,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궤도에서 살아남았다”고 설명합니다.

이번 시뮬레이션이 달 탄생의 정답을 맞혔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인류는 달 표면에 있는 암석을 자세히 분석하긴 했지만, 표면 아래 깊은 곳은 아직 들여다보지 못했으니까요. 2025년 나사가 보내는 달 유인 탐사선이 달을 심부 탐사한다고 하니, 달 탄생의 비밀이 그때 자세히 밝혀질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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