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한국어 척척 + 매너 싹싹 이싸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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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형, 안녕하세요."

"(놀라서)어, 그래. 오랜만이구나. 요즘 어디 살지?"

"저~기 영통에요. 형도 잘 지내시죠?"

"그래, 일요일 경기 잘해라."

16일 경기도 기흥에 있는 수원 삼성 축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이싸빅(33.사진(左)) 선수와 제가 나눈 대화입니다. 2004년 한국으로 귀화한 그는 우리말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합니다. 1998년 한국에 와 2002년까지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었던 그는 2003년 성남으로 이적한 뒤 입에 밴 경상도 사투리를 교정하기 위해 애썼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싸빅 선수를 처음 만난 건 99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도 우리말을 제법 능숙하게 구사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출신인 그는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4개 국어에 능통하고, 언어 습득 능력도 뛰어납니다.

이싸빅은 "내 영혼의 절반은 한국으로 채워졌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팀을 응원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귀화를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붙임성도 좋은 그는 수원 팬 사이에서도 단연 인기 '짱'입니다.

수원에는 또 다른 귀화 선수인 데니스(29.사진(右))가 있습니다. 러시아 출생으로 1996년 열아홉 살 때 수원에 입단한 데니스는 2002년까지 뛰면서 숱한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성격이 불 같았고, 생활도 좌충우돌이었습니다. 김호 감독이 어르고 달래면서 7년간 데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2003년 성남으로 이적한 데니스는 귀화하면서 '이성남'이란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제대로 못했고, 한국에 대한 애정도 그리 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 그는 수원으로 복귀하면서 프로축구연맹에 '이성남'이 아닌 '데니스'로 등록합니다.

데니스는 차범근 감독에게도 골칫거리입니다. 올 시즌 거의 출전을 하지 못하다가 이제 좀 컨디션이 좋아져 챔피언전에 기용하려고 했는데 "몸이 아프다"며 16일 훈련에 나오지 않았거든요.

대조적인 성격의 이싸빅과 데니스, 두 귀화 선수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전 소속팀 성남을 상대로 어떤 활약을 할지 지켜볼까요.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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