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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간 아버지 기억하려 현철이란 이름 계속 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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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금 기분이 어떤가.

"중앙일보에 기사가 나간 뒤 독일 언론의 주목을 받게 돼 긴장된다.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생사 확인부터 됐으면 좋겠다. 생존 여부만 확인해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우리가 북한에 가든지, 아버지가 이곳으로 오셔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구체적인 상봉 계획을 짜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라고 들었나.

"45년 전 헤어질 때 나는 생후 10개월 된 아기였다. (홍옥근씨는 결혼 다음해인 1961년 북한 당국이 서독 탈출을 우려해 동독 유학생을 몽땅 소환하는 바람에 북한으로 돌아갔다. 2년간은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그 뒤론 연락이 두절됐다.) 젊은 시절 아버지 사진을 본 것과 어머니에게서 들은 얘기가 전부인데,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으로 아무리 그리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어릴 적 아버지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우리를 찾아오시겠지' 하는 기대를 했다. 자라면서 동생하고는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피했다. 서로에 대한 상처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 없이 자란다는 건 어린아이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늘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옆에서 맏아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 레나테 홍씨는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현철씨가 이날 40년 넘게 가슴속에 묻어둔 속내를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성은 물론 현철이란 이름을 지금도 쓰고 있는데 어릴 적 놀림을 받은 적은 없었나.

"18세까지는 공식 서류에서도 홍현철이란 이름만 썼다. 이후 페터란 이름을 덧붙였다. 어릴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름이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한번도 이름을 바꿔 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아버지가 주신 이름이고,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아버지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 여쭤 보고 싶다. 북한에서 생활은 어떤지, 건강하게 잘 계셨는지 알고 싶다."

레나테 홍씨의 맏아들 페터 현철씨가 15일 예나의 어머니 집을 방문했다. 그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어 현철이라는 이름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예나=유권하 특파원]

-혹시 아버지가 재혼했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재혼 여부와 상관없이 만나고 싶다."

-어머니는 45년간 아버지 말고는 다른 남자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성한 아들로서 어머니의 재혼을 권하지 않았나.

"지난 세월 어머니는 우리를 건강하게 잘 키우는 데만 온 힘을 쏟으셨다. 그 밖에 다른 일에는 신경 쓰지 않으셨다. 재혼 여부는 전적으로 어머니가 결정할 사항이다. 물론 그동안 어머니가 재혼하셨더라도 우리들은 어머니의 뜻을 존중했을 것이다."

예나=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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