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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징병아들 무사귀환 빌며 한땀한땀…그 조끼 문화재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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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신생활복. 최경자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으로, 치마와 저고리를 붙인 원피스 형태에 앞섶 여밈은 단추를 달아 실용성을 높였다. 고름은 탈부착형으로 제작해 한복의 형태를 비슷하게 갖추면서 편리함을 높였다. 사진 문화재청

1960년대 신생활복. 최경자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으로, 치마와 저고리를 붙인 원피스 형태에 앞섶 여밈은 단추를 달아 실용성을 높였다. 고름은 탈부착형으로 제작해 한복의 형태를 비슷하게 갖추면서 편리함을 높였다. 사진 문화재청

1940~60년대 의복이 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7일 '일제강점기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 '1950년대 나일론 블라우스' '1960년대 신생활복'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예고한다고 밝혔다.

'1960년대 신생활복'은 정부가 '신생활복장'을 제정하고 보급하던 시절을 보여주는 유물로, 생활 복식사 및 한복의 현대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최경자 디자이너가 신생활복 표준안을 재해석해 디자인한 옷으로, 저고리와 치마를 붙인 원피스 형태의 옷이다. 저고리를 여미는 부분도 단추를 달았고, 고름은 장식을 위해 탈부착형으로 제작했다.

함께 등록예고된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는 6.25 전쟁 직후 최경자 디자이너가 폐낙하산으로 만들어 판매했던 블라우스의 디자인에서 유래된 1950년대 나일론 블라우스다. 당시 나일론 섬유는 사치품으로 분류돼 수입이 금지된 품목이었지만, 나일론 섬유로 만든 옷이 유행했던 시대상황과 당시 편물, 봉제기술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징병당한 아들이 무사하길 빌며 어머니가 붉은 수를 놓은 조끼. 뒷면에는 '무운장구', 붉은 띠에는 '기 무운장구 / 김성 은영군'이라 적혀있어 착용자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문화재청

일제강점기 당시 징병당한 아들이 무사하길 빌며 어머니가 붉은 수를 놓은 조끼. 뒷면에는 '무운장구', 붉은 띠에는 '기 무운장구 / 김성 은영군'이라 적혀있어 착용자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문화재청

'일제강점기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는 1940년대 제작된 유물로, 일제강점기에 징집된 아들이 무사하길 바라며 어머니가 만든 면 조끼와 어깨에 두르는 붉은 띠를 일컫는다.

조끼에 붉은 실로 박아넣은 촘촘한 점 무늬는 러일전쟁 전후 전쟁에 끌려간 가족의 귀환을 바라며 일본인들이 만들던 '천인침'에서 유래한 것이다. '천인침'은 한 개의 천에 1000명의 여성이 붉은 실로 한 땀씩 매듭을 만들어 출정 군인의 무사 귀환을 빌어 주던 당시 일본 내 신풍습이었다. 일제강점 상황에서 국내에까지 전해진 일본의 풍습이 아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조선인 어머니의 손끝에서 조끼와 붉은 띠로 만들어졌다. 조끼 뒷면과 어깨띠에는 '무운장구(무인으로서 운명이 길고 오래감, 전쟁에서 무사하길 비는 말)'가 적혀있고, 착용자 이름도 함께 적혀있다.

1940년대 조끼는 착용자의 후손이 최경자 디자이너의 딸인 신혜순 한국현대의상박물관장에게 기증했고, 신 관장은 조끼와 함께 50~60년대 의상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세 의상을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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