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공동 명의로 집 한 채를 가진 정모(44)씨. 올해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하는데 얼마일지는 여전히 깜깜이다. 정부가 종부세를 깎아주겠다고 발표한 지 오래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아직 넘지 못해서다. 정씨는 “공제액 상향 등 정부 개선안대로라면 종부세가 150만원인데 법 개정이 안 되면 340만원을 내야 한다”며 “국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법 통과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냥 340만원 다 낸다 생각하고 기대를 접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표 감세안이 거대 야당 반대에 가로막혔다. 당장 올해분 종부세에 적용하기로 한 1주택자 특별공제는 무산될 위기다. 16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오는 20일이 ‘데드라인’이다. 이때까지 조세특례제한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기존 법에 따라 다음 달 종부세 고지서가 나간다. 1주택자 공제액이 정부가 발표한 14억원(11억원+특별공제 3억원)이 아닌 현행 11억원 그대로 적용된다는 의미다. 종부세 납부 대상자도 늘어나고 납부액도 올라간다. 정씨 같이 부부 공동명의라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1주택자 공제액 상향 여부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기 때문이다.
올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감세 법안이 쟁점이었다. 기재위 소속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국감에서 “올해 종부세 관련해 20일까지 최종적으로 확정해야 하는데 아직 불확실성이 있다”며 “(1주택자 대상) 공제가 12억ㆍ13억ㆍ14억원 어느 것이 될지에 따라 부부 공동명의인 분은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당초 14억원 하자는 것을 대안으로 12억원까지도 좋으니 마무리해달라 했으나 국회에서 협의가 안 되고 있다”며 “(20일 법안 처리) 기한을 넘기면 개인이 직접 종부세 신고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상 적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주택자 공제액을 현행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대신 공정시장가액비율(공시가 기준으로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비율)을 60%에서 80%로 올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기재부가 추진하는 종부세 감면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는 안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5일 기재부 국감에서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영국이 감세 정책을 철회한 걸 아실 것”이라며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초대형 기업의 세수를 깎고 민생 예산을 줄이려 한다. (영국처럼) 부자 감세를 철회할 생각은 없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정부가 450억 파운드(약 72조원) 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가 금융시장 충격에 철회한 일을 빗대서다.
이에 추경호 부총리는 “영국과 우리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영국 문제의 핵심은 감세가 아니라 재정 건전성”이라며 “영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00%를 넘게 되고 국채 발행량이 확대되면서 신용등급 하향 전망 등이 우려되자 국제통화기금(IMF)도 경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는 또 "법인세 개편안은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감면 폭이 더 크다"며 "(법인세를 인하하면) 결국은 투자를 늘리고 세수에도 선순환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주식 양도소득세 면제 기준 상향, 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 등 윤 정부표 감세안 전반에 민주당은 반기를 들고 있다.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5일 국감에서 “상위 1%를 위한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의석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 반대에 정부 감세안은 시동도 못 걸고 좌초할 위기다.
‘긴축 재정’을 표방하는 윤 정부표 내년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김성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초부자 감세와 슈퍼부자 감세에 대해 정부가 이제 입장을 정해야 할 때”라며 “지역 화폐 예산, 6만 명에 달하는 노인 일자리 예산, 청년 일자리 예산, 기후위기 대응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예산을 확보하려면 세수를 늘려야 하는데,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 화폐, 노인ㆍ청년 일자리, 신재생 에너지 등 윤 정부 출범과 함께 폐기되거나 대폭 깎일 예정인 예산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감세안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금을 납부하려면 미리 현금을 준비해야 하는데 얼마를 내야 할지 정확하지 않은, 납세자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국민 입장에서 납세 예측 가능성, 법적 안정성 침해가 심각한 데 국회는 이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