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밤 군용기·미사일·포사격…"北, 277분간 남침훈련 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한밤에 군용기 비행훈련과 탄도미사일 발사, 해안 포사격 등 다양한 무력시위를 순차적으로 실시하며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리고 있다. 앞으로 북한이 전차를 동원한 대규모 지상훈련과 해안 상륙훈련 등 본격적인 남침 훈련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13일 밤부터 시작한 북한의 도발은 이튿날 새벽까지 4시간 30분 넘게 계속됐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북한 군용기들이다.

북한은 지난 10일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을 포함한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해 포병과 비행대들의 합동타격훈련을 실시했다며 관련 사진들을 공개했다. 북한은 또 다시 13일 밤부터 14일 새벽 사이 4시간 30분 넘게 군용기 비행과 포사격,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잇달아 감행했다.뉴스1

북한은 지난 10일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을 포함한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해 포병과 비행대들의 합동타격훈련을 실시했다며 관련 사진들을 공개했다. 북한은 또 다시 13일 밤부터 14일 새벽 사이 4시간 30분 넘게 군용기 비행과 포사격,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잇달아 감행했다.뉴스1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13일 오후 10시 30분쯤부터 14일 오전 0시 20분까지 군용기 총 10여대가 동ㆍ서 내륙 지역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에서 전술조치선을 넘어 남쪽으로 비행했다. 군은 즉각 F-35A 스텔스 전투기 등을 긴급 출격시켜 대응했다고 밝혔다.

군은 북한 군용기가 빠른 속도로 남침하는 상황에 대비해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20~50㎞ 북쪽 상공에 전술조치선을 설정하고 있다. 북한 군용기가 이를 침범하면 군은 곧바로 전투기를 띄워 대응에 나선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북한은 군용기가 전술조치선을 넘으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그런데도 최근 계속 공군력을 과시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군사적 의지를 내비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에도 북한 전투기 8대와 폭격기 4대가 남하해 특별감시선을 넘긴 했지만, 더 남쪽에 있는 전술조치선을 침범하기는 지난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이다. 당시엔 탈북자 단체가 임진각에서 대북전단을 띄우자 나흘 뒤 미그-29 전투기 4대가 전술조치선을 넘어 개성 상공까지 비행했다.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에 포사격 

특별감시선 침범 때와 달리 "이번엔 군용기들이 떼를 이뤄 편대 비행을 하진 않았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대신 서로 다른 군용기가 ‘9ㆍ19 군사분야 남북합의서’(2018년 9월 19일 체결)에서 설정한 ‘비행금지구역’ 가까이 내려왔다.

서부 내륙에선 비행금지구역 북방 5km(MDL 북방 25km), 동부 내륙에선 비행금지구역 북방 7km(MDL 북방 47km), 서해에선 NLL 북방 12km까지 접근했다가 북으로 다시 돌아갔다. 9ㆍ19 군사합의를 교묘히 비껴가는 도발을 감행한 셈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은 뒤이어 실시한 동ㆍ서해안 포사격에선 더 과감한 시도를 했다. 북한은 14일 오전 1시 20분부터 5분간 황해남도 용연군 마장동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방사포(다연장로켓의 북한식 표현)를 포함해 130여발을 쐈다. 또 강원도 고성군 구읍리 일대에서도 이날 오전 2시 57분부터 10분간 동해상으로 40여발을 발사했다.

그런데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쏜 포탄 중 다수가 9ㆍ19 군사합의에서 포사격을 금지한 ‘해상완충구역’에 떨어졌다. 다만, 영해에 떨어진 탄들은 없었다. 해상완충구역은 서해의 경우 덕적도 이북에서 북한의 초도(남포 인근) 이남까지 135㎞ 구간이고, 동해는 속초부터 북측 통천까지 80㎞ 범위다.

군 당국은 “명백한 9ㆍ19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14일 아침에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해 위반 사실을 지적하고 합의 준수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대북전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포사격 하다가 평양서 SRBM도 쏴

북한의 이같은 행동을 두고 "최근 정부가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나들며 남측 대응을 살피는 떠보기식 전법”이라고 짚었다.

북한의 속내는 다를 것이란 지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겉과 달리 자신들에게 유리한  9ㆍ19 군사합의를 스스로 깨려고 하진 않는다”며 “합의 파기의 빌미를 주진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동ㆍ서해 포사격을 하는 사이인 14일 오전 1시 49분쯤 평양 순안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1발도 동해상으로 쐈다. 한ㆍ미 군 당국은 미사일의 비행거리를 약 700㎞, 고도는 약 50㎞, 최고 속도는 약 마하 6(음속의 6배)으로 탐지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실시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전술핵운용' 관련 훈련이라고 강조하면서 지난 10일 관련 사진들을 공개했다. 사진은 초대형 방사포인 'KN-25' 미사일을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발사하는 모습. 뉴스1

북한은 지난달 25일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실시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전술핵운용' 관련 훈련이라고 강조하면서 지난 10일 관련 사진들을 공개했다. 사진은 초대형 방사포인 'KN-25' 미사일을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발사하는 모습. 뉴스1

이날 일본 방위성은 “미사일이 변칙궤도 비행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만일 회피 기동을 했다면 사거리 등 비행 특성을 볼 때 요격이 까다로운 KN-23 미사일(북한판 이스칸데르)을 발사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처럼 다양한 군사 도발을 장시간에 걸쳐서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양 위원은 “북한의 공격 패턴은 전형적인 대남 타격 방식에 따른 것”이라며 “다음 수순으로 기계화부대 대규모 이동, 공기부양정을 통한 대대적 상륙훈련, AN-2기를 이용한 특수부대 강하훈련 등 전시에 준하는 남침 훈련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미 MLRS 사격훈련 빌미 내세워 

정부는 “북한이 9ㆍ19 군사합의를 어긴 것은 물론 탄도미사일 발사로 유엔 안보리 결의까지 한꺼번에 위반했다”며 엄중 경고에 나섰다. 반면 북한은 “남측의 포사격에 대응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13일 낮 한ㆍ미 군이 강원도 철원의 포병 사격장에서 실시한 다연장로켓포(MLRS) 사격훈련을 빌미로 내세웠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4일 대변인 명의 발표에서 “13일 아군 제5군단 전방지역에서 남조선군은 무려 10여 시간에 걸쳐 포사격을 감행했다”며 “우리는 남조선 군부가 전선 지역에서 감행한 도발적 행동을 엄중시하면서 강력한 대응군행동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번 도발이 "13일 남측이 실시한 10시간 이상 포사격에 대응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8월 31일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하시동 사격장에서 한·미 연합 다연장로켓(MLRS) 실사격 훈련에 참가한 한미 포병부대 소속 MLRS가 로켓을 발사하는 모습. 사진 육군

북한은 이번 도발이 "13일 남측이 실시한 10시간 이상 포사격에 대응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8월 31일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하시동 사격장에서 한·미 연합 다연장로켓(MLRS) 실사격 훈련에 참가한 한미 포병부대 소속 MLRS가 로켓을 발사하는 모습. 사진 육군

이에 대해 군 당국은 “MLRS 사격훈련은 9ㆍ19 군사합의와 무관한 후방의 사격장에서 더 후방(남쪽)의 목표 지역에 발사했다”며 “계획된 훈련을 한 것일 뿐”이라고 응수했다.

한편 군은 오는 17~28일 연례 야외기동훈련인 호국훈련을 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훈련엔 미군 전력도 일부 참여할 예정이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이를 빌미로 새로운 도발을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 교수는 “핵무기를 완성한 국가들처럼 북한은 과거보다 훨씬 공격적”이라며 “미국의 항공모함이 들어와도 미사일을 쏘는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도발을 계속하는데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