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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학생 정신병원 가둔 이란..."히잡, 문화일뿐" 보수파도 균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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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라리자니 전 이란 국회의장(오른쪽)이 지난 2017년 12월 공개 석상에 나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오른쪽 두 번째), 하산 로하니 전 이란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알리 라리자니 전 이란 국회의장(오른쪽)이 지난 2017년 12월 공개 석상에 나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오른쪽 두 번째), 하산 로하니 전 이란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한 달째 이어지면서, 이란 내 보수 진영에서도 당국의 강경 대응에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알리 라리자니(65) 전 이란 국회의장은 이날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정부의 강경 노선은 보편적이지 않다"며, 경찰 당국의 과도한 히잡 단속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히잡은 문화적인 것일 뿐이며, (이를 강제할) 법령이 필요치 않다"며 "히잡 단속 권한이 경찰에게 주어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라리자니 전 의장은 이란 정계 보수 진영의 핵심 인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고문으로도 일했다. 그는 지난해 대선에서 후보로 출마하지는 못했으나, '보수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에 대적할 만한 중도보수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라리자니 전 의장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엔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착용해 왔다"면서 "문화 현상으로 접근하면, 강도 높은 대응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의 강경 대응책은) 편두통 환자에게 심장병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맞지 않는 정책"이라며 "거리로 나온 젊은이들은 우리의 자녀들이기에, 사회는 더 많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히잡 착용은 개인의 자발적 의지 영역이므로 국가가 강제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란 정치권 내에서 정부의 히잡 단속에 대한 이견이 표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디언은 "이란 정치 엘리트 집단 내부에서 첫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일어난 히잡시위로 도로가 정체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일어난 히잡시위로 도로가 정체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13일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사흘만에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으로 촉발한 반정부 시위가 이란 전역에서 4주째 격화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이스라엘을 반정부 시위의 배후로 지목하며 서방 세계의 정치적 선동이라고 규정했다. 시위대는 '폭도'로 규정해 강경 진압에 나서고 있다.

이날 보안 당국은 수도 테헤란을 중심으로 밤샘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자 최루탄 등을 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테헤란 검찰총장은 수도에서만 '폭도'들에 대해 60여 건의 기소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모바일과 인터넷 접속도 전면 차단하며 온라인까지 통제하고 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200명 이상이 시위와 관련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했다.

외신은 시위에 나선 학생 중 일부가 정신병원으로 후송돼 구금됐다고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이란의 유세프 누리 교육장관은 이날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학생들이 '심리 기관'에 구금돼 있다"고 밝혔다. 교육장관은 "이 시설에선 '반사회적' 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학생들을 재교육 중"이라며 "변화된 학생들만 수업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장관은 구금된 학생의 숫자 등에 대해선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이란 당국은 지난 9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쿠르디스탄주(州)의 학교를 폐쇄한 후 학생 시위대를 체포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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