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의문사’ 항의 시위가 확산하고 있는 이란에서 학생 시위대가 정부 보안군에 의해 통제된 학교 안에서 소리소문없이 끌려가고 있다고 가디언·더타임스 등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이날 오전부터 북서부 쿠르드족 거주지 쿠르디스탄주(州)에 있는 모든 학교 및 고등 교육기관을 폐쇄 조치했다. 쿠르디스탄주는 앞서 지난달 13일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16일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22)의 고향이다. 이곳에선 아미니의 의문사를 둘러싼 반정부 시위가 보안군과의 충돌로 4주째 더욱 격화 중이다.
현재 소셜미디어(SNS)에는 정부 보안군이 차량 번호판이 없는 밴(대형 차량)을 타고 나타나 학교를 포위한 후 학생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는 글과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와 관련, 무함마드 마흐디 카젬 이란 교육부 장관은 "학교 내 소요사태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란 인권단체들은 이날 쿠르디스탄주를 포함해 이란 전역 수십 개 도시에서 수백 명의 여고생과 대학생들이 보안군의 최루탄과 곤봉, 심지어는 실탄 조준에 대치해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테헤란 당국은 실탄 사용을 부인 중이다.
최근 이란 내에선 학생 시위대를 중심으로 정부와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란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새 학기를 맞이한 학교에서 10대 후반~20대 초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전국민 시위의 날'(Nationwide protests)이었던 지난 8일 이란 전역 도시 곳곳의 대학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8일 테헤란 알자흐라 대학을 강연 목적으로 방문하자, 학생 시위대가 그를 둘러싸고 "꺼져"라고 외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라이시 대통령은 학생과 교수진 앞에서 페르시아 시를 인용해 "소란은 파리 소리와 비슷하며, 곧 사그라들 것"이라며 시위대를 '파리'에 비유했다.
논란이 일자 라이시 대통령의 해당 발언 영상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그러나 SNS상에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젊은 여성이 라이시 대통령의 연설 영상에 에프킬라를 뿌린 후 파리채로 때리는 영상이 퍼지는 등 비판이 커졌다.
같은 날 이란 국영방송 채널이 생방송 도중 해킹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사진이 화염에 휩싸이고, 그의 머리에 총 조준점이 겨냥되는 장면이 약 11초간 송출됐다. 영상엔 "우리 젊은이들의 피가 당신 손에 달려있다" "우리와 함께 일어서자"는 자막과 함께 아미니의 흑백 사진이 담겼다.
이번 사이버 공격은 자칭 '아달라트 알리'(알리의 정의)라는 해킹조직이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이란의 국영방송이 해킹되는 일은 매우 드문 사건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란 정부의 즉각적인 대응은 없었다. 하지만 사건 당일 오후 라이시 대통령이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과 긴급회의를 소집한 후 이튿날인 9일 학교 폐쇄 조처가 내려졌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지난 8일 기준 이란 전역의 반정부 시위로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최소 185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