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文캠프 포상" 자소서로...연봉 9227만원 공기업 사장 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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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인 경영이 이뤄져야 합니다. (중략)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대구 선대본 상임본부장을 맡아 노력한 공로로 당 대표 1급 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2017년 5월 12일 오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 4층 CIP 라운지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5월 12일 오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 4층 CIP 라운지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12월 한국부동산원의 자회사 알이비파트너스㈜ 사장에 선임된 남칠우 전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이 사장 응모 때 쓴 자기소개서의 일부다. 한국부동산원은 각종 세금의 기초가 되는 토지와 건물의 가격을 매기고 부동산 가격 통계를 발표하는 역할을 하는 공기업이고, 알이비파트너스는 토지 수용 때 보상 관련 기초 조사 등을 주요 업무로 하는 자회사다. 부동산 관련 전문 지식이나 경영 능력이 요구되는 직무임에도 불구하고 ‘대선 공적’을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11일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알이비파트너스는 사장추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6명의 응시자 가운데 남칠우 전 위원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3년의 임기를 보장받은 남 사장은 현재 9227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서 의원이 문제삼는 지점은 남 사장의 주요 이력이다.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낙선했고,  2018년 지방선거 땐 대구 수성구청장 민주당 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떨어졌다. 서 의원이 확보한 남 사장의 자기소개서에 따르면 남 사장은 주요 이력으로 민주당에서 치렀던 선거 경험을 나열했다. 특히 “4번의 총선, 1번의 구청장 출마, 지역주의 벽에 끝내 좌절”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대구 선대본 상임본부장을 맡아 노력한 공로로 당 대표 1급 포상을 받기도 했다”고 적는 등 민주당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이력을 자세히 설명했다. 자소서엔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부겸 선배님과 함께 혼신의 힘으로 지역주의와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치 현장에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인생의 실패는 있을 수 없다”는 대목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을 위해 설립된 한국부동산원 자회사인 알이비파트너스의 남칠우 사장이 응모자격에 미달하는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도 지난해 10월 알이비파트너스의 사장으로 선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을 위해 설립된 한국부동산원 자회사인 알이비파트너스의 남칠우 사장이 응모자격에 미달하는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도 지난해 10월 알이비파트너스의 사장으로 선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그러나 남 사장의 자소서엔 정작 응모 자격에 부합하는 내용은 없었다는 게 서 의원 측의 설명이다. 알이비파트너스가 지난해 10월 만든 ‘사장 초빙’ 기준에 따르면 ‘부동산 조사·관리 및 건물 위생·경비·시설관리 등 관련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분’이 응모 자격으로 명시돼 있다. 사장 지원동기로 “저의 마지막 열정을 알이비파트너스에서 마무리하고 싶다”고 쓴 남 사장은 ‘회사 운영방침 및 주요사업계획’ 등을 묻는 항목에는 “사람이 먼저인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는 등 추상적인 내용만 기술했다. ‘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다. 서범수 의원은 “자소서에 경영에 대한 설명은 없고 민주당 경력만 실려 있다. 민주당 공천 심사 서류에 가까운 이력서”라며 “이런 이력서로 사장이 된 건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알이비파트너스가 애초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회사란 점도 논란이다. 이 회사는 2018년 11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한국부동산원의 위탁 분야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설립됐고, 지난 10월 기준 221명의 직원이 소속돼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 자회사 상당수가 낙하산 인사의 창구로 악용된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지난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자회사를 설립한 23개 공기업의 임원들을 분석한 결과 신설된 34개 자회사의 상근 임원 51명 중 모회사에서 퇴사해 재취업한 인사가 33명에 달했다. 이른바 ‘캠·코·더’(대선 캠프·코드 인사·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도 15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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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자회사인 엘에이치주거복지정보㈜ 이재영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이 대표 변호사를 지낸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 출신이다.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항공보안파트너스㈜ 신용욱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경호처 차장을 지냈다. 한국도로공사 산하 한국도로공사서비스㈜ 노항래 대표는 민주노총 출신으로,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 원내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알이비파트너스의 전임 대표인 박영기 전 대표 역시 민주당 영주·문경·예천 지역위원장 출신이다.

서범수 의원은 “남 사장 사례 역시 문재인 정부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명분으로 만든 공공기관 자회사가 낙하산 채용 경로로 악용됐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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