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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다물어, 필립" 여왕 부부, 불같이 싸우면서도 74년 해로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서거한 가운데, 70년이 넘게 해로한 남편 필립공과의 일화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47년 결혼 당시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오른쪽)과 남편 필립공. EPA=연합뉴스

1947년 결혼 당시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오른쪽)과 남편 필립공. EPA=연합뉴스

9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1947년 부부의 연을 맺고 2021년 필립 공이 사망하기까지 총 74년을 부부로 살았던 두 사람의 일화를 재조명했다.

1939년 7월 여왕은 13세의 공주였던 시절 다트머스 왕립해군 학교에 방문했을 당시 18세의 필립공에게 첫눈에 반해 인연을 맺게 됐고, 8년만인 1947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결혼했다.

1953년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공. AFP=연합뉴스

1953년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공. AFP=연합뉴스

74년이라는 긴 세월 함께 했다는 사실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러브 스토리’가 주로 전해지지만, 사실은 크게 부딪힌 적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여왕은 매사에 신중했고,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성격이었다. 반면 필립공은 무뚝뚝하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필립공의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대중 앞에서는 공손하지만, 왕궁 내에서는 가부장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고 한다.

여왕은 가족 문제에 있어서는 대체로 필립공의 의견을 따랐다.

일례로, 신혼 초 필립공이 외삼촌인 마운트 배튼경과 여왕을 차에 태우고 폴로 클럽에 가던 날 이런 일이 있었다. 차 속도가 빨라지자 긴장한 여왕이 필립공에게 들릴 정도로 소리를 내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를 참지 못한 필립공은 “자꾸 그러면 내리게 하하겠다”며 여왕에게 화를 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마운트배튼경이 여왕에게 “왜 항의하지 않았나. 여왕의 말대로 차가 너무 빨리 달렸다”고 하자 여왕은 “그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셨나”라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여왕이 순종적인 아내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기 작가인 사라 브래드퍼드에 따르면 여왕은 남편에게 “필립, 입 닥쳐.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하는 등 직설적인 말을 내뱉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1954년 여왕 부부가 호주를 방문했을 당시 일화도 있다. 당시 촬영기사는 여왕 부부의 코알라·캥거루 관람을 촬영하기 위해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필립공이 날듯이 집 밖으로 나왔다. 이어 여왕이 따라 나오며 “돌아오라”고 소리쳤고 결국 여왕은 필립공을 끌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바깥으로 나온 여왕은 침착한 표정으로 촬영기사에게 “모든 결혼생활에 이런 일은 있게 마련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물었다. 촬영기사는 문제의 장면이 찍힌 필름을 햇빛에 노출해 못쓰게 한 뒤 여왕의 언론담당 비서에게 제출했다.

2012년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공. EPA=연합뉴스

2012년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공. EPA=연합뉴스

이런 다툼도 적지 않았지만, 여왕은 평생 필립공에게 푹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사진 기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노인이 된 뒤에도 필립공을 보는 여왕의 눈은 소녀처럼 반짝거렸으며, 필립공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걸 보면 얼굴이 밝아지곤 했다.

그런 필립공이 2021년 4월 100세 생일을 불과 2개월 앞두고 만 99세 나이로 사망했다. 여왕은 이때 크게 상심했다. “삶에 큰 구멍이 생겼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왕실 안팎에서는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건강함을 자랑하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필립공 사망 1년여 만에 서거하게 된 것도 이러한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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