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딜레마를 만드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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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참으로 이상하다. 국민은 대개 알고 있는데 이 정부는 계속 엇박자를 낸다. 전효숙씨를 헌법재판소장으로 만드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정연주씨 아니면 KBS 사장감이 없는가. 일을 왜 이리 복잡하게 만들어 심사를 복잡하게 만드는가. 이건 약과다.

출자총액제한제라는 것이 있다. 애당초 이 정부가 올해 말이면 없애보자 한 것이고, 그래서 논의가 시작됐다. 그랬더니 웬걸, 갑자기 순환출자 금지를 골자로 하는 대체조치가 거론되고 논의는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왜 출총제를 풀자는 얘기가 나왔는가. 여력이 있는데도 지지부진한 기업의 투자를 쓸데없는 규제로 막지는 말자는 논의 아니었나. 하지만 이 정부는 재벌 소유 구조의-백수들은 관심도 없는-문제로 끌어올려 정말 쓰잘 데 없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하곤, 되지도 않는 출총제 '완화'조치를 내놓았다.

엊그제 부동산 대책이란 걸 내놨다. 엄청 복잡하지만 핵심은 여전히 빠져 있다. 나는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처음부터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보유세를 늘리는 것, 다주택 소유자에게 좀 더 많은 세금을 물린다는 것, 금융 쪽에 상당한 규제를 가하겠다는 것. 다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 문제에 왜 엉뚱한 이념을 끼워넣느냐는 거다. 넝마 조각 같은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아!, 정책이 이렇게 꼬이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이다. 상식 있는 정부라면 공급 확대가 우선됐어야 했다. 필요한 곳에 집 짓게 하고 적당한 거래엔 세금을 완화해 물꼬를 터 줘야 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갑자기 이른바 '성장이냐 분배냐', '증세냐 감세냐' 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더니 급기야 '20%냐 80%냐' 하는 식의, 나라 운영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얘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부동산은 그저 부동산인데 이 정부는 쓸데없는 딜레마를 만들어 국민에게 강요했다. 세상에 할 얘기가 따로 있지, 대부분 세금 잘 내고 법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게 '너 나쁜 놈'하는 정부가 이 세상에 있는가. 세율을 올려 세금을 더 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건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욕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부동산 값이 미쳐 있고 떨어질 거라고 본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정책효과가 아니라 인구나 가구 형태의 변화, 유동자산의 움직임, 조금 더 나가면 삶의 방식이 바뀌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이 정권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참 나중에 집값이 떨어지면 이 정권 사람들이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한심한 소리를 할까봐 미리 하는 말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한 요즘 정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도 매한가지다. 정상적 사고라면 핵무기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가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 정부는 달라진 것이 없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정식 참여를 거부하면서 이 정부는 '남북충돌'의 우려를 내세웠다. 충돌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북핵은 '방어용'이라고 변명을 하더니, 갑자기 '전쟁이냐 평화냐'하는 엉뚱한 논지를 만들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자주냐 동맹이냐가 안 먹히니까 이젠 아예 '감성' 접근의 엉뚱한 논리를 펴고 있다. 북핵 불용(不容)을 내세우면서, 북한이 이 땅에 핵을 쓸 리가 있겠느냐는 불용(不用)의 자기합리화로 정책을 편다.

누가 전쟁을 원하겠는가. 전쟁의 참화를 피하기 위해서, 전쟁의 불안을 초기에 제거하기 위해서 뭘 할거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전쟁이냐 평화냐' 한다. 이건 거짓 딜레마, 또는 의사(疑似) 딜레마다. 햇볕과 포용,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리할 때도 논리의 가닥은 서야 한다. 전쟁과 평화로 국민을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정말 이런 건 하지 말자. 나 스스로 북에 일가붙이가 있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통일 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아닐 땐 아닌 거다. 상황 판단이 어렵다면 가만히라도 있자. 자꾸 쓸데없는 딜레마를 만들어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는 말자. 각자의 생활을 꾸려가기도 골치아픈데, 없는 딜레마까지 만들어 국민 머리를 아프게는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박태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