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많았다, 그만 나가달라' 한밤 전화에 2명 용산 나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진행 중인 대통령실이 29일 정무수석비서관실 홍지만 정무1비서관과 경윤호 정무2비서관을 동시에 전격 교체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두 비서관이 오늘 오전 사퇴 의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사의 과정에 대해 잘 아는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전날 밤 용산에서 갑자기 ‘고생 많았다. 그만 나가달라’는 취지의 전화가 두 사람에게 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자진 사퇴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사실상 사직을 권고한 경질에 가깝다. 용산과 여의도와의 소통 채널을 맡는 정무 라인을, 그것도 1·2 비서관을 동시에 바꾼 건 예전엔 없던 일이다.

그만큼 정무라인이 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아쉬움과 보강 의지가 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들의 후임에 대해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도 소통이 가능한 협치·통합형 인사를 중심에 놓고 여러 인사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두 비서관에 대한 교체는 윤 대통령이 이날 출근길 발언 직후 확인된 탓에 더 크게 주목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에서 “대통령실은 국민에게 가장 헌신적이고 가장 유능한 집단이 돼야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할 수 있다”며 “(대통령실 직원들은) 국가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 그리고 업무역량이 늘 최고도로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후 브리핑에서 “특별히 대통령실 안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분들이 있을 수 없다. 국민을 위한 시선을 맞추는 데에 분리되거나, 각자 소속이나 추천 경로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진다면 대통령실에 근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최근 2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업무 기술서’를 제출하도록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추석 전까지 비서관급 10명 안팎의 인적 개편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대통령실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내정됐던 김무성 전 의원 카드도 일단 보류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이 가짜 수산업자에게 차량을 무상제공 받은 사건에 연루된 데다, 여당 지지층 사이에서 여론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권성동 원내대표, 장제원 의원 등과도 가까운 사이다. 이를 두고 여권 내부에선 “대선 때 공을 세운 윤핵관 그룹과 새로운 대통령실 주류 세력간 갈등의 결과물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고강도 감찰에 대해서 "조직의 업무 역량을 높이기 위한 통상적 감찰"이란 톤으로 설명해왔지만, 인사 폭이 커지고, ‘김무성 카드’ 임명 보류 기류까지 합쳐지면서 "윤핵관 그룹에 대한 견제가 틀림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내부 인적쇄신이 시작되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비서관급 이하 중에서 윤핵관 라인이나 다른 비선 라인을 타고 들어온 인사들의 업무수행 등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살펴볼 것”, “윤 대통령이 아니라 윤핵관에 충성하는 참모들을 찾아내 정리할 것"이란 말을 공공연하게 해왔다. 실제로 이날 사의를 밝힌 홍지만·경윤호 비서관을 비롯해 문건 유출 문제로 인사위원회에서 면직 결정을 받은 시민사회수석실 임현조 비서관과 인사 개입 문제로 사퇴한 같은 수석실 A 비서관 등도 다 정치권 출신 인물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6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을 향해 '엄지 척'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6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을 향해 '엄지 척'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행정관급에서도 주로 윤핵관과 관련이 있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하루가 멀다하고 짐을 싸고 있다. 정치권 출신의 행정관은 익명을 전제로 중앙일보에 “대통령실의 추천과 인사 검증은 검찰·관료 라인이 하고, 쇄신을 한답시고 희생양을 우리로 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주말 사이 대통령실 내부에선 “주진우 법률비서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등 인사 난맥상에 책임을 질 사람들도 쇄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수뇌부의 판단에 따라선 이들에게도 불길이 옮겨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