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객 7명 사망 사고에‥ 때아닌 샤오훙수·틱톡 ‘책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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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중국 쓰촨(四川) 성 펑저우(彭州) 시의 한 계곡에서 피서객 7명이 불어난 물에 휩쓸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계곡 인근 산 정상에는 많은 비가 내렸고, 이 때문에 급격히 불어난 물이 계곡에서 놀고 있던 피서객을 덮쳤다.

아이를 안고 구조를 기다리는 피서객. 사진 sina

아이를 안고 구조를 기다리는 피서객. 사진 sina

사고가 발생한 계곡은 펑저우(彭州) 시 룽먼산(龍門山) 진에 위치한 룽차오거우(龍漕溝)다. 사고 발생 한 시간 전, 룽먼산진에는 관내 대류 구름이 생성돼 한때 강한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 예보가 들어왔다. 룽먼산진 정부는 즉각 순찰조를 파견해 룽차오거우에서 놀고 있던 피서객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몇몇 피서객은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얼마 뒤 갑작스레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변을 당했다.

안타까운 인명피해 소식에 중국 온라인상에선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사고에 대한 ‘틱톡’과 ‘샤오훙수’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들이 ‘핫플’이라고 밀어줬던 룽차오거우가 실제로는 재해 위험이 가득한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룽차오거우. 사진 웨이보_封面新聞

룽차오거우. 사진 웨이보_封面新聞

룽차오거우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정식 관광지가 아니다. 이곳은 지형 특성상 산사태 및 홍수 발생 위험이 커 국가급 지질 재해 구역으로 지정돼있다. 이 때문에 지역 개발과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있으며, 현지인의 발길 역시 뜸한 편이다.

온라인상에 게시된 룽차오거우 추천 여행 콘텐트. 사진 웨이보/貼貼君

온라인상에 게시된 룽차오거우 추천 여행 콘텐트. 사진 웨이보/貼貼君

그러나 온라인상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중국 대표 SNS와 여행 플랫폼들은 앞다퉈 룽차오거우를 ‘올여름 추천 관광지’로 소개했다. 사고 발생 전까지 틱톡, 샤오훙수, 씨트립, 다중뎬핑(大衆點評), 마펑워(馬蜂窩)등에는 룽차오거우 관련 중차오(種草)*콘텐츠가 넘쳐났다. 이들은 ‘피서(避暑)’ ‘물놀이(玩水)’ ‘캠핑(露營)’ ‘무료(免費)’ ‘왕훙(網紅)’, ‘아이 동반여행(遛娃)’ 등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해시태그를 잔뜩 달아 룽차오거우를 핫한 여행지로 추천했다.

* 중차오(種草): SNS에 좋은 상품이나 정보 등을 공유해 타인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행위를 말한다. 중차오의 대상에는 물질적인 제품뿐만 아니라 여행과 같은 다양한 경험도 해당한다.

반면에 룽차오거우의 안전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명 블로거와 크리에이터들은 출입이 금지된 룽차오거우를 되려 “개발이 안 돼 원시 자연을 그대로 보유한 생태 물놀이장”이라며 치켜세웠다.

출입금지 안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곡에 진입하는 관광객들. 사진 sina

출입금지 안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곡에 진입하는 관광객들. 사진 sina

잘못된 정보에 혹해 룽차오거우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자, 지난해 관할 정부는 계곡 초입에 ‘물놀이 금지’ 안내판을 세우고 철조망을 설치했다. 또한 외부에 여러 차례 방문 자제 공문을 내보내고, 계곡 일대를 일일이 순찰하며 피서객들의 해산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미 SNS 성지로 떠오른 룽차오거우의 열기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행 꿀팁’ 이라시며 친절하게 철조망에 난 개구멍 위치를 알려주는 게시글만 늘어날 뿐이었다.

이번 사고는 사실상 인재(人災)에 가깝다. 1차 책임은 안타깝지만, 출입 금지 안내와 대피 명령을 무시한 채 계곡에 머물던 피서객에게 있다. 그러나 2차 책임은 게시글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플랫폼에 있다는 게 현지 언론과 누리꾼들의 주장이다.

사고 발생 후 신랑재경(新浪財經), 상유신문(上游新聞) 등 현지 매체는 플랫폼이 사전에 콘텐츠에 대해 제대로 된 심의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유명 법조인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플랫폼은 안전 주의 의무와 콘텐츠 검토 의무가 있으며, 콘텐츠 게시자 역시 대중에게 위험성을 적시할 의무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안전 경고 없이 게시물을 올리는 경우, 플랫폼과 콘텐트 게시자 모두 일정 부분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사고 발생 후,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선 룽차오거우를 추천하는 여행 콘텐츠들이 잇따라 삭제됐다. 현재 샤오훙수에 ‘룽차오거우(龍槽溝)’를 검색하면, 기존의 여행 공략 대신 ‘여행 시 안전에 주의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표시된다.

그러나 플랫폼에는 여전히 제2, 제3의 룽차오거우가 넘쳐난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린 동굴, 협곡, 삼림 등을 추천하는 게시글이 사용자의 피드를 가득 채우며 잘못된 여행 욕구를 부추긴다. 안전에 불감한 크리에이터들은 개발이 안 됐거나 출입이 금지된 여행지를 대중에게 추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플랫폼 역시 사고가 터지기 전까진 별다른 제제나 조처를 하지 않는다.

이 밖에, 이용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과도한 필터와 허위 정보도 문제다. 지난해 10월 샤오훙수는 ‘가짜 필터 명소’ 논란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샤오훙수의 추천 게시글을 보고 여행지를 찾았다가 ‘사진 빨에 속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사진 웨이보

사진 웨이보

감성 사진 스폿으로 떠오른 싼야(三亞) 칭수이완(清水灣)의 파란 가옥은 오랜 기간 흉물로 방치돼 온 폐건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유일의 핑크빛 해변이라던 윈난(雲南) 청장(澄江)의 한 모래사장은 실제로는 붉은 기가 조금 감도는 진흙밭에 불과했다.

논란이 일자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선 ‘#나는 더는 샤오홍수를 믿지 않는다(我再也不相信小紅書了)’, ‘#샤오홍수의 사진 필터가 얼마나 강한가(小紅書的網圖濾鏡有多強)’ 등의 해시태그가 연이어 핫토픽에 올랐다. 이 두 해시태그는 합계 4억 6000만 뷰의 조회 수와 3만 5000여 건의 토론량을 달성할 정도로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2022년 틱톡 여행 생태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틱톡에서는 2억 7천만 명의 사용자가 '여행' 토픽에 관심을 보였다. 틱톡 내 여행 관련 동영상의 게재량과 공유량은 전년 대비 각각 65%, 117% 증가했다. 샤오훙수에서도 여행 콘텐츠는 쾌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샤오훙수에서 검색되는 여행 관련 게시글은 1084만 건에 달한다.

최근 들어 틱톡과 샤오훙수는 방대한 콘텐츠와 막강한 중차오(種草) 파워를 바탕으로 여행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 발생한 사건들로 이들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지에서는 “허위·왜곡·위험 콘텐츠 모두를 플랫폼에 탓할 순 없지만, 마땅히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망 사고까지 발생한 만큼, 이들을 예의주시하는 눈이 늘고 있다.

차이나랩 권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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