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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순으로 뽑히지 않는 레지던트|침례병원 파동 계기로 본 수련의 제도의 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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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허점 많은 제도>면접·실기평가에 정실 개입 소지
의사 과잉공급 논란 속에 「월급 입찰제」 등 갖가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부산 침례병원 인턴들의 출근 거부 사태 및 레지던트 선발과 관련한 상납 관행에 대한 경찰 수사로 의료계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의사인력 양성 및 수련, 자격 부여 등 전반적인 제도상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침례병원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개경쟁이 제도화 된 전공의(인턴·레지던트)선발을 둘러싸고 청탁·금전수수설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전문 과목과 수련병원·지역에 따라 인력의 수요·공급에 차이가 크고 시험관리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지원자들의 대도시 병원 및 인기 전문 과목 선호에 의해 경쟁이 심화되는데 비해 수련병원별 시험관리는 이 같은 경쟁과정에서 파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기에 미흡하다는 것이다.
현재 전공의 수련과 선발 등은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및 시행규칙(보사부령)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우선 전공의 수련 병원은 일정한 기준을 갖춘 해당 의료기관의 신청을 받아 보사부 장관이 지정하며 수련 병원별로 매년 전공의 정원을 책정해준다.
이에 따라 전국 2백24개 종합병원 가운데 83%인 1백87개 병원이 전공의 수련병원으로, 10개 의과대학이 수련기관으로 지정돼 있으며 올해의 선발 정원은 인턴 2천9백18명, 레지던트 2천3백13명으로 책정 돼 있다.
올해 의사 국가고시 합격자가 2천7백98명인 점을 감안하면 인턴의 경우 산술적으로는 경쟁이 없는 것이며 레지던트의 경우도 인턴 수료자와 상당수의 「재수생」이 응시 한다해도 평균 2대1에 훨씬 미달하는 경쟁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선발시험을 거쳐 확보한 인원은 인턴 2천8백13명, 레지던트 2천1백56명으로 정원의 93∼97%밖에 채우지 않는 미달상태다. <별표 참조>
이 같은 상황인데도 레지던트 선발과정에서 잡음이 생기는 것은 대도시 병원이나 유명 병원, 인기 진료과목에 지원자들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위 인기과로 불리는 성형외과·신경외과 등 외계계통과 비뇨기과·피부과 등은 경쟁이 치열한 반면 일부 마취과·방사선과 등은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수련 병원별로 실시하는 전공의 선발은 「공개 경쟁시험을 실시하여 성적순으로 임용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으나 정실이 개입될 소지가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공의 선발시험은 전·후기로 나둬 통상적으로 매년 12월 첫째 주에 전기, 셋째 주에 후기 전형을 실시한다.
전형방법은 인턴의 경우 필기고사 60%+의과대성적 20%+면접 및 실기 20%로, 레지던트는 필기고사 45%+인턴근무성적 35%+면접 및 실기 20%의 비율로 합산성적을 내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해당 수련병원 의사가 출제하는 필기고사나 면접·실기 평가 등에서 특정한 응시자를 유리하게 해 줄 수 있는 소지가 생기며 이 과정에서 청탁이나 금품수수 등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78년 15개 대학에 1천 여명 남짓하던 의과대학 정원이 졸업정원제 실시이후 현재 31개 대학에 3천명 가까이 늘어난 것도 레지던트 경쟁을 가열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의의 증가는 바람직한 측면도 있으나 6년 교육을 받고 의사자격을 받은 사람이 추가 수련기회를 거치지 않아도 현업에 종사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과정에서의 임상교육이 충실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보사부 측은 『현재 의사 국가시험을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 중에 있다』며 『이번 기회에 레지던트 선발과정에서의 부조리를 막기 위한 근본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한천수 기자>

<끊임없는 잡음>일부 인기과는 1억까지 거래세|의료인 자질과 직결, 적절한 대책 시급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선발에서 금품거래는 이른바 경쟁률이 강한 성형외과·이비인후과·피부과·안과 등 인기과목일수록 액수가 커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의사지망생들이 과거와는 달리 크고 위험한 수술이 없이 되도록 편하면서도 쉽게 돈 벌 수 있는 분야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
또 대도시의 유명 부속병원과 개인이 세운 종합병원 또는 군 종합병원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 C종합병원 성형외과 레지던트 2년 차인 P씨(28)는 85년 모교에서 인턴과정을 마쳤으나 형편(?)상 도저히 모교의 레지던트 자리에 낄 수 없었다.
P씨는 모교 레지던트 과정을 포기하고 일반 개인병원에 취직해 야간에는 다른 병원의 당직의사를 맡는 등 3년여 동안 속된말로 「피나는 아르바이트」로 저축해 돈을 모아 지난해 이 종합병원에 들어올 수 있었다. P씨는 끝내 액수를 밝히지 않았으나 주변에서는 『적어도 3천만원 정도는 썼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울시내에서 성형외과라면 병원·인간관계에 따라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는 하나 「5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이 든다는 것이 통설이다.
모병원 안과 J의사는 몇 년 전 모교의 안과 레지던트를 지망했다 떨어졌다. 시험 성적으로 보나 인턴 과정·학생시절의 성적으로나 레지던트 임용에 떨어지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으며 주위에서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낙방이었다.
레지던트 합격자 발표에서, J씨는 전혀 예기치 않았던 동료가 합격된 사실을 발견했다. J씨는 자신을 밀어내고 들어온 그가 『집을 팔아 비용을 마련했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다며 씁쓸해했다.
지금은 개업을 하고 있는 T의사(피부과)의 경우도 모교의 후배 인턴들을 밀어내고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간 유명한 케이스. 당시 레지던트 과정에서 탈락한 T씨는 서울시내 H병원
에서 인턴과정을 밟으며 절치부심, 다시 모교의 레지던트 과정에 응시해 합격함으로써 수많은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다.
T씨가 『1천만원을 썼다』는 소문이 나중에 새나왔다. 지난해 지방에 있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A씨는 앞으로의 전망·장래문제를 심각히 고려한 결과 수도권 지역으로 진출할 것을 결심해 인천의 모 종합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병원 측이 인턴과정에서도 5백만원을 요구해와 결국 그만뒀다.
이 병원은 올 초 서울의 H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과정을 지원한 L씨에게서 3천만원을 온라인 통장으로 전해 받은 뒤 5백만원을 추가로 받은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금품수수가 모든 병원에서 일반적인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서울 모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레지던트 L씨는 『전공의 선발에 액수가 책정돼 있지는 않다. 또 서울지역 대학병원의 경우 현금거래는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 과장이나 병원장의 자가용을 바꿔준다든지, 학교에 실험기자재를 기증하는 형식이 가장 많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K대학 L씨는 『대학 측에서 병원에 연구비를 대주는 데가 어디 있느냐』며 『과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부금 입학형식으로 실험·연구기자재를 기증하는 학생도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L씨는 『일부 병원의 경우 아예 7대3 혹은 8대2로 「경쟁선발」학생과 「기부선발」학생을 구분한다는 말도 있다』며 『이 때문에 아예 이러한 제도를 양성화시키자는 주장도 일고 있는 형편』이라고 동향을 소개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치열한 경쟁이 빚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의료계와 의학교육 전체의 인상을 흐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부일지라도 드러나는 문제점들은 의료인의 기본윤리나 자질과 직결되는 성격인 만큼 적절한 대책과 함께 자정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기준·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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