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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작이 6부작 됐다"…쿠플 '안나' 공방, 판례 누구 손 들었나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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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69] "8부작 드라마가 6부작 됐다"…'안나' 감독-쿠팡플레이 공방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가 지난 6월 공개한 드라마 '안나', 사소한 거짓말로 완전히 거짓 인생을 살게 된 주인공 유미(배수지 분)의 이야기를 다뤄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사진 쿠팡플레이

사진 쿠팡플레이

드라마는 6부작으로 막을 내렸지만, 감독과 쿠팡플레이 사이 갈등은 아직 종영하지 않은 듯합니다. 드라마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주영 감독은 "8부작으로 편집한 작품을 쿠팡플레이 측이 임의로 편집해 6부작으로 방영했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분량만 줄어든 게 아니라 서사, 촬영, 편집, 내러티브의 의도 등이 모두 크게 훼손됐다"면서요.

이 감독은 "6부작 편집본 크레딧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기까지 했지만, 쿠팡플레이 측이 이조차도 거절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스태프들도 나서 "작품에서 우리 이름을 빼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죠.

쿠팡플레이 측은 "계약상 권리를 행사했다"라는 입장입니다. "수개월에 걸쳐 감독에게 수정 요청을 전달했으나 감독이 수정을 거부했다"면서 "제작사에 동의를 얻어, 계약에 명시된 권리에 따라 원래의 제작 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다"라고 지난 3일 밝혔는데요.

이런 사건에서 법적 쟁점이 되는 건 '동일성유지권'입니다. 관련 법령과 판례를 '그법알'에서 정리해봤습니다.

관련 법령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저작권'은 크게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뉩니다. 저작재산권은 저작물에서 나오는 경제적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면,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인격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권리입니다.

저작인격권에는 '동일성유지권'이 있는데요. 저작자의 작품을 타인이 함부로 바꾸지 못하게 하는 권리입니다. '인격권' 중 하나라서,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사고팔 수도 없습니다. 

저작권법 제13조에도 명시돼있습니다.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학교 교육 목적상 표현을 바꿔야 하는 경우, 프로그램을 특정 컴퓨터에서 이용하기 위해 바꿔야 하는 경우 등 예외도 있는데요. 이럴 때도 '본질적인 내용은 바꿀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 선수 응원가가 대거 바뀐 데에도 이 '동일성유지권'이 숨어있습니다. 무단으로 가사를 완전히 새로 바꿔 응원가로 쓴다면, 저작자가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됐다"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저작권료를 내고 원곡 그대로 사용한다면 문제 되지 않습니다.

같은 법 제12조에 있는 '성명표시권' 역시 저작인격권 중 하나입니다. 나의 작품에 나의 이름을 표시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죠. 내가 원하지 않으면 내 이름을 뺄 권리이기도 합니다.

관련 판례는?

이번 국면에서 윤태용 감독의 영화 '배니싱 트윈'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영화사가 비디오 판을 만들 때 윤 감독의 동의 없이 일부 장면을 삭제하고 정사 장면을 길게 넣어 영화를 편집했던 건데요. 지난 2000년, 윤 감독은 영화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 승소했습니다. 저작인격권, 즉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한 거죠.

드라마 사례도 하나 있습니다. 한 드라마 제작사가 작가 동의 없이 줄거리를 바꿨다가 손해배상 책임을 진 건데요. 당시 작가를 중간에 교체한 제작사는, 기존 작가가 집필해둔 대본까지 크게 바꿨습니다. 죽은 사람이 하관 직전 관 속에서 살아나기도 했는데요.

재판부는 "저작물의 본질을 해하는 정도로 중대하게 내용이 바뀌었다"며 동일성 유지권이 침해됐다고 봤습니다. "집필 계약에 따라 저작재산권이 제작사에 이전된다고 해도, 저작물에 대한 동일성유지권, 성명표시권과 같은 저작인격권은 여전히 작가에게 있다"라고도 했죠.

판결문에 나온 당시 계약서도 좀 살펴볼까요. '제작사가 작가 극본에 수정이나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고 쓰여있긴 하지만, 동시에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 역시 있습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방송 표현상 부득이할 경우, 극본 본질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제작사가 극본 내용을 바꾸는 걸 작가가 동의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 제작발표회에서 진행을 맡은 박경림과 출연진들이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경림, 수지, 정은채, 김준한, 박예영. 사진 연합뉴스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 제작발표회에서 진행을 맡은 박경림과 출연진들이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경림, 수지, 정은채, 김준한, 박예영. 사진 연합뉴스

이 사건에서는 어떨까요? 쿠팡플레이 측은 "제작사와의 계약을 통해 최종적인 편집 권한을 얻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쿠팡플레이 측이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법조계에서는 "감독과 협의로 편집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감독과 제작사 간 계약에서도 최종적인 편집권은 제작사가 가지지만, 편집하는 과정에서 서로 협의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완성작을 협의 없이 손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 대법원은 "저작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동의한 범위 내에서 변경한 경우에는 동일성유지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보고 있긴 한데요. 앞서 쿠팡이 "이 감독에게 수정 요청을 했다"고 밝히자, 이 감독 측은 "수정 요청을 언제, 누구에게 했는지 밝히라"며 "쿠팡플레이나 제작사의 수정 의견을 담은 문서조차 받은 적이 없다"고 맞받았습니다.

결국 이 공방은 쿠팡플레이와 제작사가 맺은 계약서 조항으로 향할 듯하지만, 이 감독 측은 "쿠팡플레이가 제작사와의 계약을 토대로 일방적인 편집 권한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 감독을 대리하는 송영훈 변호사(법무법인 시우)는 최근 입장문에서 "쿠팡플레이가 제작사와 어떠한 내용으로 계약을 했더라도, 창작자인 이주영 감독의 동일성유지권과 성명표시권을 침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쿠팡플레이 측은 이달중 8부작의 '안나' 감독판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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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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