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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이발소 없앤 軍…부당해고 외친 이발사 졌다, 소송 전말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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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68] 이발사의 임금 인상 요구에 이발소 폐업한 군부대...소송 전말은

미용가위. 중앙포토

미용가위. 중앙포토

지난 2014년, 이발사 A씨는 모 육군 보병사단장과 1년간의 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부대 이발소에 계약직으로 고용돼 간부들의 이발 업무를 맡게 된 건데요. 근로 계약을 한 번 더 갱신한 뒤인 2016년부터는 무기 계약으로 계속 이발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2018년 5월, 사단은 간부 이발소를 아예 폐쇄하기로 하고 A씨에게도 해고를 통보합니다.

4년 동안 이 육군 부대 이발소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그 배경엔 A씨의 임금 인상 요구와 부대 간부들의 회원비(이발 가격) 인상 반발에 따른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부대의 간부들은 기존에 월 회비 8000원을 내면 한 달에 두 차례 이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민간에선 1만원이 넘는 이발비가 한 번에 4000원 꼴이니 무척 쌌던 거죠. 회원비는 A씨가 근무한 2014년부터 4년간 8000원으로 동결됐습니다.

A씨가 무기 계약직이 된 뒤 2016년 말부터는 이발소 근무 사병이 없어지고, 2017년 2월 군무원마저 그만두면서 3명이 하던 일을 이발사 A씨 혼자 전담하게 됩니다. A씨는 이에 2017년 말 상여금과 수당 등 임금 인상을 요구합니다.

부대 측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임금 인상을 거부합니다. 이발소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자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부대 측은 2018년 2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발소 회원비를 10000원으로 올리는 안을 두고 설문조사를 실시했지만, 간부 52%가 인상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결국 해당 부대는 같은 해 4월 말 이 설문조사를 근거로 이발소를 아예 없애기로 하고, A씨에게도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실제로 이발소는 다음 달인 5월 말에 폐쇄됐고 A씨 역시 해고됐습니다. A씨는 6월 15일,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합니다. 지노위 결론은 각하. "이미 사업장이 폐쇄돼, 구제해도 소용이 없다"는 취지입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기각됐고, A씨는 법원에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A씨 주장은 이렇습니다. "만약 A씨가 근로 계약을 체결한 상대방이 국가라면, 다른 군사시설 이발소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사단 내 다른 복지시설에서도 근무할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도 했죠. 단순히 간부 이발소가 없어졌다고 해서 중노위가 각하 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입니다. 게다가 사업장이 갑자기 없어져 임금도 끊긴 상황이니 중노위가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최근 대법원이 이 사건의 결론을 내놨습니다.

여기서 질문!

우선 "다른 사단 이발소에라도 보내달라", "사단 내 다른 시설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A씨 주장은 1·2·3심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국방부 훈령 등에 따르면 A씨를 다른 사단으로 전보할 수 없다고 하고요. A씨가 미용 업무에 한정해 근로 계약을 체결한 만큼, 사단 내 다른 복지시설로 전보할 근거도 없다는 겁니다.

결국 1·2·3심에서 뜨거운 쟁점이 된 건 이 질문이었습니다. "이미 회사가 없어져 근로계약 관계를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다면,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가".

관련 판례는!

지난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비슷한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무기계약직 노동자가 지노위와 중노위를 찾았지만 구제받지 못했고, 1심 소송을 하던 중 정년이 된 건데요. 1·2심 법원은 이 노동자가 당연퇴직했으니 중노위를 상대로 더 소송을 할 이익이 없다고 보고 각하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다르게 봤습니다.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정년이 돼 복직은 할 수 없더라도, 부당한 해고라는 사실을 확인해 줄 필요는 있다는 거죠.

대법원 대법정. 중앙포토

대법원 대법정. 중앙포토

법원 판단은?

다시 A씨 사건을 볼까요. 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 전인 2019년, 1심 재판부는 A씨의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10월 2심 재판부는 이 결론을 뒤집고 A씨의 승소로 판결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도 인용했습니다. "만약 A씨에 대한 해고가 무효여서 미처 못 받은 임금을 받을 필요가 있다면, A씨가 중노위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발소가 없어져 복직이 불가능했다고 하더라도요.

대법원 전경. 중앙포토

대법원 전경. 중앙포토

그렇다면 A씨는 대법원에서도 승소했을까요? 아닙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심 판결을 파기해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3일 밝혔는데요.

무슨 차이일까요? 대법원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도의 특성과 시점에 주목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례의 경우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에 정년이 됐죠. 그런데 A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기 전에 이미 이발소가 없어져 근로계약 관계가 회복할 수 없게 됐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A씨에게 민사소송의 선택지도 생긴다고 합니다.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데요.

결국 대법원이 의문을 품은 건, "민사 소송 선택지를 두고 왜 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사측에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거나 형사처벌도 가해질 수 있거든요. 만약 이미 근로계약관계가 끝난 상태에서도 부당해고 구제명령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형사처벌의 범위가 넓어질 우려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 신청과 관련해 처음으로 판시한 것이기도 합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기 전에 이미 정년이 되거나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등 근로자의 지위가 없어졌다면, 노동위로부터 구제 명령을 받을 이익도 없어졌다고 본 것입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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