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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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5세 여자 환자가 멍이 잘 든다고 진찰실로 찾아왔다. 환자는 팔이나 다리의 아래쪽에 조그맣게 멍이 잘 들고 생리시에 악화되며 수일 후에는 없어진다고 한다. 진찰결과는 단순성 자반증이었다. 이 경우는 검사에도 이상을 보이지 않으며 특별한 치료가 필요없다.
멍이 든다는 것은 피부 밑의 출혈을 의미하는데 피부, 피부 밑의 지방층, 혈관 벽, 그리고 핏속의 이상에 관계가 있다. 흔히 어딘가에 손발이 부딪쳤을 때 파란 멍이 들거나 정맥주사를 맞고 난 뒤 혈관 밖으로 새나와 멍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멍이 들더라도 빨리 사라지므로 내버려둬도 대개는 염려가 없다. 옴·수두·홍역 등이 있거나 벌레에 물렸을 때, 특히 가려움이 심해 가려운 부위를 긁게되면 멍이 들게 되는 경우도 있다. 노인성 자반증이라 하여 피부의 퇴행성 변화로 멍이 생기는 수도 있다. 대체로 팔이나 다리의 아래쪽에 크고 넓적한 반점이 나타나는데 이것 자체는 염려할 것이 없다.
출혈성질환이 있을 경우는 쉽게 멍이 들뿐 아니라 빨리 없어지지 않고 오래 가게 된다. 이러한 출혈성 질환의 원인으로는 출혈이 생겼을 때 멈추게 하는 혈관의 이상, 혈소판의 이상, 응고인자의 이상 등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혈관이상으로 인한 출혈성 질환은 대표적인 병으로 알레르기성 자반증인데 이의 가장 특징적인 소견은 피부에 나타나는 멍으로 처음에는 조그맣게 발진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개가 합쳐져 큰 멍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주로 다리 부위에 생기며 대부분의 경우 배가 아프거나 장에서 출혈이 생긴다. 약 50%의 경우에 콩팥이 나빠진다. 혈소판의 이상으로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혈소판은 핏속에 있는 아주 작은 세포로서 피가 나올 때 피를 굳게 만들어 상처를 막아 피를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병이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으로 이 병은 특히 l5세 이하의 소아에게서 많이 나타나며 대부분 감기나 독감 등을 앓고 난 후 갑자기 피부에 여러 군데 멍이 들고 조그만 출혈 반점이나 코피 등이 나게 된다. 이것은 몸 속에 혈소판에 대한 항체가 생겼다가 주로 비장에서 파괴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 외에도 약물에 의해 올 수 있는데 아스피린계 진통제, 항생제 등이 해당된다. 또한 백혈병과 같은 암, 간이나 콩팥이 심하게 나쁠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혈소판 감소증에 의한 출혈이 피부에 나타나는 것이 멍이지만 몸 속에서도 출혈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뇌출혈로 출혈하는 부위에 따라서는 약간의 출혈량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응고인자의 이상으로 오는 경우는 혈우병이 대표적인데 이는 유전병으로 남자에게서만 나타나고 여자는 보인자로서 임상적 출혈현상은 없다. 응고인자는 혈액을 굳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이 병은 주로 근육이나 관절 등의 심부조직에 발생한다. 부딪쳤을 때 멍이 들거나 멍이 나타나도 빨리 사라지는 것은 대개 걱정할 것이 없으나 쉽게 멍이 들고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면 그 원인을 찾아 적절히 치료받아야 하며 출혈성 질환이 있는 경우 외상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윤방부(연대 의대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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