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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추첨으로 결혼 시킨다…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책 한권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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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연합뉴스

웨딩드레스. 연합뉴스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이게 뭔 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일본에서 출간돼 한국에도 2019년 번역본이 나온 소설 제목입니다. 드라마로도 제작돼 최근 한국에도 방영됐죠. 내용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20~30대 남녀가 출산은커녕 결혼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정부에서 개입합니다.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추첨 맞선 결혼법’이라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합니다. 25~35세 미혼 남녀는 국가가 주도하는 맞선에 응해야 하는데, 상대는 무작위로 추첨이 되죠. 3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모두 거절할 경우 군대에 갑니다. 2년 동안 한국으로 따지면 전방에 해당하는 험지로 가게 되죠.

책 '결혼상대는 추첨으로' 한국어판 책 표지. 예스24

책 '결혼상대는 추첨으로' 한국어판 책 표지. 예스24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내용인것이, 지난 15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인구 통계 조사 결과를 보실까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저출산 대책 담당 장관이 직접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20대 남성 중 70%, 여성 중 50%는 배우자 또는 교제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혼인 건수는 (제2차 세계대)전후 가장 적어졌으며 반면 혼인 중 약 3분의 1은 이혼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가족 형태의 다양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이를 안 낳는 것뿐 아니라 결혼도, 연애도 안 하는 숫자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입니다. 앞으로도 결혼할 의사는 없다고 답한 이들 역시 30대 이상에서도 25% 가량이라고 아사히는 전했습니다. 싱글 중 약 4분의 1은 평생 싱글로 남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20대처럼 취업이 어려워서 결혼할 여력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정도 생계를 꾸리게 된 30대를 넘어가서도 독신의 길을 택하는 이들이 이젠 무시할 수 없는 다수가 됐습니다.

도쿄에서 웨딩사진 촬영 중인 한 커플. AFP=연합뉴스

도쿄에서 웨딩사진 촬영 중인 한 커플. AFP=연합뉴스

1945년 이후 결혼하는 커플 숫자가 가장 적다는 일본이니, 위의 소설 역시 그저 픽션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지 않을까요. 20대 여성의 절반, 20대 남성 중 열에 일곱은 ‘나혼자 산다’ 주의인 셈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초식남’ ‘초식녀’를 넘어 거의 ‘절식남녀’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바다 건너 불구경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 역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이제 뉴스도 못 되니까요. 지금이야 좀 다르지만, 한때 일본이 한국이 10년 후라는 얘기도 있었으니까요. 내친 김에, 위의 소설을 쓴 작가가 궁금해집니다. 1959년생 가키야 미우(垣谷美雨). 일본의 사회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과 블랙 유머를 섞어 다작을 해왔습니다.

냈던 책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노후 자금이 없습니다』,『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서른두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라고 합니다. 한국에 가장 최근 나온 소설은 지난해 출간된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라고 합니다.

'건어물녀'(바쁜 일상에 지쳐 연애보단 혼자 쉬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일본 드라마 '호타루의 빛'(2010). [중앙포토]

'건어물녀'(바쁜 일상에 지쳐 연애보단 혼자 쉬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일본 드라마 '호타루의 빛'(2010). [중앙포토]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타박 또는 한탄만 할 게 아닙니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됐음을 인지하고 육아의 부담을 국가가 덜어주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할 때라고 기사도 칼럼도 많이 썼지만, 여전히 한국의 미래는 오리무중입니다. 맞벌이 부부의 남편이 가사를 ‘돕는다’는 등의 표현이 여전히 버젓이 쓰이는 상황에서, 한국 여성의 혼인 의사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줄어들어 갈 겁니다. 그렇다고 최근 논란이 된 모 공익광고에서처럼 남의 집 아이가 내게 무례한 행동을 했는데도 ‘괜찮아’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출산 문제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영어 표현 중 ‘방 안의 코끼리(an elephant in the room)’가 된 거 같습니다. 눈 앞에 뻔히 보이는 문제인데도 아무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는 문제말입니다. 코끼리는 그사이 계속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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