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현 대통령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하는 장면이 (지난 10일) 취임식에서 특히 강렬했습니다.”
미국 사상 첫 ‘세컨드 젠틀맨(the Second Gentleman)’인 더글러스 엠호프 부통령 부군이 11일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은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의 남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 축하 친서를 전할 인물로 엠호프를 택했다. 그는 지난 10일 용산 집무실을 방문한 첫 외교사절로도 기록됐다. 중앙일보는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의 11일 방한 일정 전체를 동행 취재했다. 국내 언론 중 유일하다. 주한 미국대사관저, 일명 하비브 하우스에서 단독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날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은 오전엔 용산 전쟁기념관을 둘러본 뒤 대사관저에서 한국 근무 중인 미 외교단 및 주한미군과 그 가족을 직접 만나 격려했다. 이어 광장시장에 들러 방송인 홍석천 씨와 함께 시장의 대표 먹거리들을 맛본 뒤 인근 청계천을 거닐며 서울 시민과 인사를 나눴다. 미국 부통령 부군의 첫 방한이라 경호는 삼엄했지만 세컨드 젠틀맨 본인은 소탈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광장시장 같은 식당에서 빈대떡을 먹던 차홍규(70)씨는 “고급 식당에 갈 것 같은데 소탈해서 친근했다”며 “미국의 좋은 면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은 본인에 대한 기사를 다룬 중앙일보 지면(2020년 12월 29일자 16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56649)을 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을 써줬다”며 반가워했다.
- 이번 방한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이 궁금합니다.
- “이틀 됐는데 즐거운 일이 가득했던 터라 1주일처럼 느껴집니다. 우선, 사절단을 이끌고 바이든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게 돼서 큰 영광입니다. 전 국민과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임 문 대통령과 신임 윤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는 지금, 한국에서 이렇게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이뤄지는 건 선명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여러분의 나라가 전세계를 향해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준 겁니다.”
- 한국에서 인상적인 건 뭘까요.
- “음식 등 문화를 먼저 꼽고 싶어요. 넷플릭스 등 다양한 콘텐트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해왔고 로스앤젤레스(LA) 출신이라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만 이렇게 직접 와서 한식을 맛보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한국 문화와 한식에 푹 빠졌어요. 김치 너무 좋아합니다. 매번 두 번 씩 (리필을) 부탁하고 있을 정도이니까요(웃음).”
이날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은 가는 곳마다 눈길을 끌었다. 전쟁기념관에 7세 아들과 함께 나들이온 김 모씨는 기자에게 “저분이 미국 부통령 본인 아니고 남편이라고요?”라고 되물었다.
- 사상 첫 세컨드 젠틀맨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텐데요.
- “이번이 세 번째인데요, 해외 방문 때마다 주목을 받습니다. (대선 레이스에서) 미국 전역의 30개 넘는 주(州)를 방문하면서도 그랬고요. 새로 배우고 느끼는 게 많죠. 나라를 위해 해외에서 헌신 봉사하는 분들과 그 가족을 만나는 건 절대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오늘도 주한 미대사관에서 공직과 (미)군 분들을 면담하면서 뭔가 울컥하더군요.”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의 본업은 변호사다. 검사 출신인 부인이 정계에 진출하고, 부통령으로 당선하면서 본인의 커리어는 잠시 접었다. 일종의 ‘경력 단절’이다.
- 일을 쉬는 것에 대한 좌절감도 있었겠죠.
- “(단호히) 없습니다. 도리어 영광이죠. 제 부인을 사랑해요. 제 나라도 사랑합니다. 세컨드 젠틀맨은 제가 사랑과 국가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인 거죠. 물론 저는 제 본업도 사랑합니다. 30년 간 (변호사를) 해왔고, 못하지는 않았어요(웃음). 성공도 일궜죠. 하지만 이 (세컨드 젠틀맨)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은 전무했습니다. 부인이 첫 성공한 첫 여성 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자고 바로 다짐했어요. 물론 파티를 기획 조정하거나 하는 건 새로운 일이긴 합니다(웃음).”
-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도 울림을 주네요.
- “부인을 포함해 모든 여성이 자신의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올려주는 것(lift up)은 남자다운(manly) 일이기도 합니다. 경제발전에도 좋고요. 남자의 기회를 빼앗는 게 아니라 남녀가 함께 성장하는 거니까요. 그녀(해리스 부통령) 역시 저를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부부로서 상호 간에 도움을 주고받는 거죠. 방한 사절단의 리더로 바이든 대통령이 저를 지목하자 (부통령이) 자랑스러워 하더군요(웃음).”
- 한국에서 양성평등은 다소 민감한 문제가 되어 왔는데요. 한국의 남녀 모두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요.
- “항상 강조하는 메시지인데요, 양성 평등은 남녀 모두를 위한 겁니다. 단순히 공정의 차원을 넘어 모두의 평등을 위한 거죠. 여성의 성공이 남성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건 경제에도, 우리가 일하는 기업과 기관, 사회 전체에도 좋은 일입니다. 남성을 배제하는 거라는 생각은 잘못됐고, 팩트도 아닙니다. 전 세계 모든 남성이 이를 이해했으면 해요. 오늘 대사관저에서도 많은 여성 공무원 및 군 관계자들이 제게 와서 ‘(해리스 부통령의) 존재만으로 우리는 가능성을 본다, 고맙다’고 하더군요. 소수의 권익을 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 해리스 부통령을 향한 정치적 비판도 일각에서 나옵니다만.
- “정치에 뛰어든다는 것,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 자체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죠. 이 점을 그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카멀라는 강합니다. (비난이) 그를 흔들 수 없죠. 미국 국민을 위한 일에 온 열정을 바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 중앙일보 독자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 드립니다.
-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행정부의 관계가 소중한 한·미 동맹을 위해 특히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뿐 아니라 곧 이뤄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메시지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언젠가 곧 다시 한국에 오고 싶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