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회사 다 쓰러지니 노조 정신 차려 우리도 파업 계속하다간 망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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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대중공업 김성호(사진) 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 7명은 지난달 15일부터 23일까지 미국에 다녀왔다.

김 위원장과 일행은 미국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제너럴 모터스(GM) 등을 둘러봤고 미시간주립대에서 나흘간 미국 석학들과 노사관계 세미나를 열었다. 노조 간부들은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을 최근 연수 보고서로 냈다.

"미국의 경우 회사가 다 쓰러지고 나서야 노조가 정신을 차렸다. 우리도 더 이상 정치파업이나 집회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노사가 함께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눈앞의 이익만 좇는 근시안적 시각과 오만함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파산과 실업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연수 보고서 요약.

◆ 망한 모델 따라가면 안 된다= 미국에선 글로벌화로 생산 규모가 축소되고 심각한 고용불안이 야기되면서 노조의 정치활동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던 1980년대 들어 고용 수준이 떨어지면서 임금인상 요구에 매달리던 노조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노조의 양보교섭(give and take)이 두드러지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고민이 시작됐다. 지금 우리가 정치파업을 하는 것은 망하기 시작하던 80년대 미국을 따라가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파업=해고'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80년대까지 연평균 200여 건에 달하던 파업 건수가 지난해에는 15건에 불과했다.

◆ 노조보다 일자리가 중요하다=미국에서 노조가 있는 기업의 임금은 주당 752달러이고 무노조 기업은 615달러다. 그러나 노조조직률은 97년 14.1%에서 지난해에는 12.7%로 떨어졌다. 미국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하지 않거나 탈퇴하는 이유는 일자리 상실 우려 때문이다.

미국자동차노조(UAW)는 올봄에 랜싱의 GM공장에서 노사협상을 하면서 ▶프레스공장 ▶차체(Body)공장 ▶조립라인 각 두 곳을 폐쇄하고, 조합원 3500명 중 1800명을 조기퇴직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는 GM이 문을 닫을 경우 지역이 황폐화할 것을 우려한 지역노조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 변화도 늦으면 안 돼=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환경이다. 미국은 다 쓰러지고 나서야 노조가 정신을 차렸다. 위기가 왔다고 느낄 때는 이미 늦다. 미국연방교섭위원인 도널드 F 파워는 "한국 노조는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노조들은 세계화에 대한 준비가 너무 늦어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다. 미리 대비하고 제때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서 더 늦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도 노조선거에서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이는 현장 내부의 경제적 현실을 모르는, 주로 현장 외부집단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 미시간대학 마이클 L 무어 교수는 "올해 7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삼성전자에서 'No Change No Future(변화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라는 슬로건을 보고 감명받았다"고 했다. 적극적 변화를 통해서만이 보다 밝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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