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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에서 되살아난 조선 시대 병풍 ‘곽분양행락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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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처리를 마친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 병풍.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보존 처리를 마친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 병풍.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 병풍의 보존 처리 전 상태.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 병풍의 보존 처리 전 상태.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 시카고미술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후기 유물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가 고국에서 보존 처리를 마쳤다.

시카고미술관 소장품…7월부터 미국서 전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30일 서울 상도동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의 언론 공개회를 진행했다.

이날 공개된 ‘곽분양행락도’는 19세기 후반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8폭 병풍이다. 크기는 가로 430.8㎝, 세로 187.1㎝로, 중국에서 근무했던 변호사 윌리엄 캘훈(1848∼1916)의 유족이 1940년 시카고미술관에 기증했다.

‘곽분양행락도’는 중국 당나라 시기에 부귀영화를 누린 무장 곽자의(郭子儀ㆍ697∼781)가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팔순 잔치를 즐기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곽자의는 ‘안사의 난’을 진압한 명장으로, 슬하에 8남 8녀를 두는 등 자손도 번창해 부귀와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곽분양행락도’는 조선시대 후기 왕실과 사대부층에서 길상화(吉祥畵)로 유행하며 혼례 등 잔치 때 장식 용도로 사용됐다.

시카고미술관의 ‘곽분양행락도’는 박물관이 소장한 이후 한 번도 전시되지 못한 채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지난해 8월 보존·복원 작업을 위해 고국에 돌아왔다. 지연수 시카고미술관 한국미술 큐레이터는 “컬렉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곽분양행락도를 보니 상태가 좋지 않아 한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지원 사업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은 2013년 시작해 현재까지 총 9개국 26개 기관을 대상으로 105점의 국외 소재 문화재의 보존처리 작업을 마쳤다.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의 보존처리 작업에 소요된 예산은 9000만 원 정도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은 “시카고미술관 작품은 현존 ‘곽분양행락도’ 중에서도 필치가 고르고 우수하며, 색상이 비교적 잘 보존된 편”이라며 “전체적인 구도, 소재를 구성하는 방식, 색감, 인물 묘사, 각종 장식 요소 표현 등을 보면 왕실에서 사용됐다고 해도 좋을 만큼 격식과 높은 수준을 갖췄다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보존 처리 작업을 진두지휘한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국외 소재 문화재의 경우 수리를 자주 하지 않아 도리어 원형 그대로 유지된 경우가 많다.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 병풍에 쓰인 장석의 구리와 주석 함량도 조선 시대 기록 그대로였다”면서 “의궤 등의 기록을 토대로 조선 후기 쓰였던 재료를 사용해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 병풍의 배접지로 사용된 '증산현갑자식남정안(1864)'. 이번 보존 처리 과정에서 발견됐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시카고미술관 '곽분양행락도' 병풍의 배접지로 사용된 '증산현갑자식남정안(1864)'. 이번 보존 처리 과정에서 발견됐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작업 과정에서 19세기 후반 작성된 다양한 조선시대 행정문서들이 병풍의 배접지(덧붙인 종이)로 사용된 사실도 확인했다. ‘증산현갑자식남정안(甑山縣甲子式男正案)’(1864), ‘정묘사월군색소식(丁卯四月軍色消息)’(1867) 등이다. 이를 통해 ‘곽분양행락도’의 제작 시기가 1867년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카고미술관은 ‘곽분양행락도’를 6월 13일 미국으로 항공편으로 가져간 뒤, 7월 2일부터 9월 25일까지 열리는 ‘친구와 가족 사이에’(Among Friends and Family) 기획전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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