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일향한 긴여정 시작”/테오 좀머가 전망한「한반도통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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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ㆍ중과 “악수”로 해빙무드 조성/남북 적대 청산… 병존관계 중요
지난 9월 중앙일보사 창간 25주년 기념대토론회에 참석했던 테오 좀머(독일 디 차이트지 주필겸 편집국장)씨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인터뷰를 갖고 지난 26일 디 차이트지에 「긴 여정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을 살펴보는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을 요약,소개한다.<편집자주>
독일의 통일로 한국보다 더 기대에 부푼 나라는 이 세계에 없다. 한반도는 1945년 분단 이래 이전 분단독일보다 훨씬 더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다. 방문객교환은 물론 우편물 연락도 없으며 남북 무역고는 고작 2천2백만달러에 지나지 않고 그것도 간접우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적인 접촉도 적었으며 지금까지 성과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독일인들이 통일을 이룬 마당에 한반도의 분단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있었던 두차례의 남북한 총리회담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한 접촉의 성과는 가위 만족할 만한 것은 못된다. 그러나 시작이 좋았다. 우리는 하나하나 쌓아 올려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전후의 폐허로부터 새로운 세계질서가 생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었고 이 변혁의 바람이 이제 한반도에 몰려와 있다. 우리는 이제 변화의 새 질서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말 한국은 헝가리ㆍ폴란드ㆍ유고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들 나라들은 한국의 기술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지난 2월에는 소련과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지난 9월말에는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또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전 한국과 중국은 무역대표부 개설에 합의했으며 내년안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이라고 한다. 한ㆍ중국간의 무역고는 1989년에 32억달러를 넘었으며 한소간의 무역고는 1990년 10억달러에 이를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중소 공산강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은 만약 북한이 개방을 하지 않는다면 고립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일본과 접근을 시작했다는 것은 이에 대한 대응이 되지 못한다. 원하든 원치않든 김일성은 시대의 조류에 순응해야만 한다.
마침내 한반도에도 해빙이 오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환상에 빠져서는 안된다. 한국인은 이제 겨우 긴 여정의 시작이 있는 것이다. 마치 1970년에 브란트 서독 총리와 슈토프 동독 총리가 에르푸르트와 카셀에서 만났던 1970년의 독일 상황과 비슷하다. 조그만 발걸음으로 가야 할 길이 이들에게는 남아 있다. 한국인들은 공존관계를 생각하기 전에 적대관계에서 우선 병존관계로 가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상호 불안감을 떨어버리고 가능한 일을 이루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불가능한 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의 한국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세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다.
둘째,세계정치의 기상도가 남북한 관계의 해빙을 가져오는 경우다. 4만3천명의 미군이 철수하고 1970년에서 1990년까지의 독일의 예에 따라 남북한이 병존의 길을 가게 되는 경우다. 셋째,한국인들이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분단된 조국을 통일시키는 경우다.
한반도가 이전의 상태대로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의 변화조류로 볼 때 상상하기 힘들다. 또한 통일이 어느날밤 갑자기 이루어진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남북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TV나 라디오를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어 너무 이질적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존관계가 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서로간의 개방,인간적 고통의 해소,이산가족찾기 및 방문,전화,우편,교역,관광을 통해 분단은 되었으나 몸체마저 잘려진 것은 아닌 상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전후 1세대는 아직도 전쟁의 쇼크에 시달리고 북한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통일을 감상적 기분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세대는 사태를 달리 보고 있다. 이들은 우려와 적대감을 떨어버리고 통일을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라고 보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북한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북한에서는 늙은 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더욱 더 강경하고 집착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아시아에까지 밀려온 변화의 바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냉전의 마지막 파편이어서는 안되며 이데올로기 분쟁의 마지막 찌꺼기가 되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대립의 얼음장을 녹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느 누구도 한반도에서 해빙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독일 디 차이트지 주필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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