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검사' 2심 감형…"살인죄 해야죠" 후빈 엄마의 절규

중앙일보

입력 2022.05.16 05:00

업데이트 2022.05.16 09:42

“나중에 아들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지난 13일 정은재(56)씨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날 부산에서 열린 재판 결과를 뒤늦게 전해 들은 뒤였다. 서모(47)씨 등 보이스피싱 조직원 일당의 항소심 선고재판이었다. 정씨의 아들 김후빈(당시 28세)씨는 2년 4개월 전 이들에게 속은 뒤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다. 최근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정씨는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12일 부산지법은 ‘김민수 검사’를 사칭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서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보다 6개월 줄어든 판결이었다. 정씨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는 “서씨에게 높은 형이 선고되기만 기다리며 버텼다. 그런데 감형이라니…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이어 “사람을 죽게 했으면 살인죄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가해자들은 형을 살고 나오면 똑같은 범행을 저지를 게 분명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검사 사칭’ 목소리에 속아 세상 뜬 아들  

연구직 공무원을 꿈꾸던 故 김후빈씨는 늘 자신보다 엄마와 동생이 먼저였다고 한다. 사진 정은재씨 제공

연구직 공무원을 꿈꾸던 故 김후빈씨는 늘 자신보다 엄마와 동생이 먼저였다고 한다. 사진 정은재씨 제공

정씨는 2020년 설 명절을 앞두고 첫째아들을 잃었다. 아들의 휴대전화에선 “금융 범죄에 연루됐다”며 송금을 요구하는 서씨와 울먹이는 아들의 목소리가 담긴 통화녹음이 발견됐다. 자신의 실수로 범죄자가 됐다고 생각한 후빈씨는 휴대전화에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수사기관이 서씨 등을 붙잡아 법정에 세웠지만, 엄마의 한은 풀리지 않았다. 아들은 죽었는데, 가해자들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검찰 구형량(징역 13년형)의 절반도 안 됐다.

서씨 등이 형이 무겁다며 항소한 점도 정씨에게 충격이었다. 결심공판에서 “벌은 주는 대로 달게 받겠다”며 울먹이던 때와 180도 달라진 모습에 정씨는 헛웃음까지 나왔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매번 아들 기일 즈음쯤 날아드는 보이스피싱 문자도 아픈 상처를 들쑤셨다. 낯선 번호의 발신자들은 자신을 “후빈이”라고 칭하면서 정씨를 엄마라고 불렀다. 아들 영정을 들고 법정 맨 앞자리를 지켰던 엄마였지만, 더는 몸과 마음이 견디지 못했다. 병원 의료진은 정씨에게 “공황장애 증상이 있다. 치료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권유했다고 한다.

정은재씨는 지난 1월 아들 후빈씨를 사칭한 문자를 받았다. 사진 정은재씨 제공

정은재씨는 지난 1월 아들 후빈씨를 사칭한 문자를 받았다. 사진 정은재씨 제공

피해자 합의 등 이유로 검찰 구형 절반 이하로

그 사이 병합심리 여부 등으로 연기됐던 항소심이 진척을 보였다. 지난달 14일 검찰은 서씨 등에게 징역 13년을 구형했다. 1심 때와 같았다. “서씨 등이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혔고 피해자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서씨 등의 범행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부산지법의 2심 재판부는 “서씨 등의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한 점, 검사를 사칭한 범행의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결과까지 발생한 점, 유족 등이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한 점을 고려했다”면서도 “피고인들이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수사기관에서 보이스피싱 범죄단체의 조직 및 수법 등을 비교적 상세히 진술하는 등 수사에 협조한 점이 인정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서씨의 경우 원심에서 피해자 10명과 합의한 데 이어 2심에서 피해자 8명과 추가 합의했고 피해자들이 서씨의 처벌을 원하고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양형 고민 필요”

법조계 일각에서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형량이 가벼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리버티)는 “이 사건은 1심에서 구형량에 비해 가벼운 형이 내려졌다.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추가 합의하는 등 감형요소가 있는 상황에서 2심에서 1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범죄에 단순 가담한 현금수거책도 주범으로 엄하게 처벌하는데 서씨의 경우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도 처벌이 가벼웠던 부분이 있다”며 “사회 전반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 형량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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