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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난동에 욱' 형량 늘린 판사, 그걸 항소한 피고인...결과는?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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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피고인을 징역 O년에 처한다.'

판사의 선고는 이 문장으로 끝이 나는 걸까요? 주문을 낭독한 이후에는 형량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요? '법이 정한 선고 절차는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13일 대법원이 내놨습니다.

법원 재판 정의 이미지. Pixabay

법원 재판 정의 이미지. Pixabay

[그법알 사건번호 28] 피고인 난동에 즉석에서 징역 1년→3년 형량 늘린 판사  

지난 2012년, 지인 명의로 3000만원짜리 차용증을 위조한 A씨. 이 차용증이 진짜인 것처럼 경찰서에 내는 바람에, 사문서위조와 위조 사문서 행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또 이 지인에게 자신 명의의 계좌를 만들라고 허락했으면서도, 자신이 그런 적이 없다며 이 지인을 고소하는 등 무고 혐의도 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16년 A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살인예비죄 등의 징역형 전과,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 등을 고려한 겁니다. 그런데 재판장은 원래 징역 1년을 선고할 생각이었습니다.

선고 기일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법정에 나온 A씨에게 재판장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항소는 며칠 안에 하면 되는지 고지하려던 참이었는데요. A씨가 '재판이 개판이야, 재판이 뭐 이따위야'와 같은 말과 함께 욕설을 하기 시작합니다. 별안간 벌어진 난동에 교도관들이 A씨를 데리고 피고인들이 대기하는 구치감으로 끌고 갔지요. 재판장은 여러 차례 A씨를 법정으로 다시 불렀습니다. 그 말을 듣지 못한 교도관들은 A씨를 구치감으로 일단 데려갔는데, 그 자리에서도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은 이어졌습니다. 법정에서는 재판장이 계속해서 A씨를 데리고 오라고 하고 있었고요. 보다못한 법정 경위가 A씨를 다시 법정 피고인석에 앉힙니다.

A씨는 여전히 "그래서 뭐 항소 기간이 어쨌다는 거냐"며 따져 물었고, 재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고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선고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기까지 이 법정에서 일어난 일을 종합해 선고형을 정정한다"

그리고 재판장은 "양형기준에서 정한 형량 범위 안에 있다"며 형량을 2년 늘려,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항소기간과 항소법원 등도 고지했고, 그제야 길고 길었던 선고가 끝났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도 '변론종결 후 판결선고 시점까지 법정 모욕적 발언 등 잘못을 뉘우치는 정이 전혀 없는 점'을 추가했습니다.

관련 법령은?

법이 정한 선고 절차를 좀 살펴볼까요. 형사소송법 제43조에 따르면 재판장이 판결을 선고할 때는 주문을 낭독하고, 이유의 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또 제324조에 따르면 피고인에게 상소 기간과 상소 법원을 알려줘야 하고요. 형사소송규칙 제147조 2항은 재판장이 판결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에게 적절한 훈계를 할 수 있다고도 돼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81조에 따르면,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재판장 허가 없이 퇴정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재판장이 피고인의 무단 퇴정을 제지할 수 있고, 법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도 나와 있습니다.

법원. 중앙포토

법원. 중앙포토

2심 판단은?

A씨 측은 단번에 징역 1년에서 징역 3년이 된 판결에 불복했습니다. 이미 퇴정한 피고인을 다시 불러다가 형량을 늘린 건 위법한 선고라는 겁니다.

2심 재판부는 어떻게 봤을까요? 지난 2017년, 재판부는 1심의 선고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주문 낭독-이유 설명-상소 관련 고지-퇴정 허가-퇴정-선고 기일 종료'라는 절차가 마치기 전이었으니, 판결 내용이 변경되는 것이 유효하다고 했습니다.

당시 징역 1년을 선고한다는 주문을 낭독한 후 A씨가 항소 절차에 대해 다 듣지 않고 퇴정한 점, 재판장이 계속해서 법정에 다시 들어오라고 명한 점 등을 고려하면 선고 절차가 다 끝난 상태가 아니었다는 거죠. 재판부는 또 "피고인의 행위가 법정질서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법권 및 사법질서를 침해하는 중대한 위법행위로서 엄히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정 모욕 등 사법방해행위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는 다른 나라의 예와 다르지 않다"라고도 했습니다. 다만 2심 재판 도중 A씨가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판단은?

대법원. 연합뉴스

대법원. 연합뉴스

그런데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김재형)도 관련 법령에 따라 선고 종료 전까지 주문을 정정할 수 있다고는 했는데, 다만 여기에 제한이 있다고 봤습니다.

주문과 선고 이유를 실수로 잘못 낭독하거나 설명했을 때, 또 판결 내용에 잘못이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등 변경 선고가 정당하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겁니다.  

A씨 사건을 심리한 1심과 2심 재판부 판단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지요. 재판부는 1심 재판장이 징역 1년이 적정하다고 봤고, A씨가 난동을 부린 건 그 이후의 사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선고 절차 중 피고인의 행동을 양형에 반영한다는 이유로 이미 주문으로 낭독한 형의 3배를 늘리는 과정에서 A씨가 어떤 방어권도 행사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해 돌려보낸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변경 선고'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고, 그 한계를 명확하게 선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하급심 운영의 기준이 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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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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