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盧후보 측의 고무줄 대선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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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가 기업들로부터 모금한 대선자금 규모가 얼마인지 점점 궁금해진다. 선대위 총무본부장으로서 자금을 총괄했던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의 해명이 말할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그의 이름(이상수)을 빗대 '앞으로 보면 이상하고, 뒤로 보면 수상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李의원은 그저께 "SK로부터 10억원이 들어온 계좌의 총액이 50억원인데, 나머지 4대 그룹 돈은 포함되지 않았고 두산.풍산 등으로부터 받은 돈"이라며 5대 그룹 이외의 기업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이 40억원이란 취지로 발언했다.

과거 발언 내용과 다르다는 지적을 받자 그는 "50억원 중 SK 후원금 25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25억원이 5대 그룹 외의 후원금"이라고 말을 바꿨다. 또 李의원이 후원회장을 맡았던 제주지부 후원회가 선관위에 신고한 모금액은 29억여원이어서 그 계좌로 50억원을 모금했다면 축소신고를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李의원이 숫자에 치밀하지 못해 헷갈렸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했을 때의 얘기다.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대선 자금 문제를 해명하면서 그때마다 말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선관위 신고금액과 실제 모금액이 달라 꿰맞추기를 하는 과정에서 허점이 드러난 것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도대체 얼마나 모금했고, 어떤 공개하지 못할 복잡한 수법을 동원했길래 본인이 헷갈릴 정도인가. 그래놓고는 "언론이 무책임한 보도를 한다"고 불만이니, 열린우리당 '코드'를 가진 사람들은 언론 탓 하는 게 체질화했는지 묻고 싶다.

盧후보 선대위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후원금 계좌와 장부를 공개해야 한다. 대선 막바지에 盧후보 측 핵심인사들이 후원회장을 맡은 4개 지부에서 사용된 무정액 영수증의 내역도 밝혀야 한다. 검찰 수사 결과 숨긴 사실이 드러날 경우 열린우리당은 도덕성에 상처를 입어 존립근거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