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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당하고 "추행만 당했다"한 이유…90대女 억울함 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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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성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광주고법, 강간죄 인정…징역 3년6개월→5년 선고   

같은 마을에 사는 9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도 1심에서 강제추행만 유죄가 선고된 60대 남성에 대해 항소심이 강간죄를 인정하고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내렸다. 피해 여성은 동네에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해 경찰에 "추행만 당했다"고 진술했으나 가해자로 지목된 60대 남성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합의 후 성관계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 이승철)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63)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5년에 벌금 20만원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7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12일 오후 8시20분쯤 B씨(90대·여) 집에 침입해 '술을 함께 마시자'고 요구하며 B씨 몸을 만지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사 결과 과거 구멍가게였던 B씨 집은 미닫이 출입문이 있었으나 사건 당시에는 주거용으로만 쓰였다.

B씨는 경찰 조사 때 A씨가 집에 들이닥친 상황과 행동, 자신의 대응 등을 상세히 설명하면서도 "추행을 당했다"고만 진술했다.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선처를 원한다"는 취지의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강간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강제추행 혐의만 인정하고 징역 3년 6개월에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판사봉. 중앙포토

판사봉. 중앙포토

피해자 "동네에 알려지면 창피해 '추행'만 진술"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A씨가 검찰에서 "B씨와 합의하고 성관계했다"고 주장한 게 원심을 뒤집는 단서가 됐다. 재조사에 들어간 검찰은 B씨로부터 "동네에 성폭행 사실이 알려지면 창피해 '추행만 당했다'고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A씨는 사건 발생 1년 전에도 안면이 없던 B씨 집에 찾아가 "나도 혼자니 같이 지내자"고 했지만, 이때는 B씨가 "모르는 남자들이 오면 집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가 경찰에 알려준다"고 하자 달아났던 것으로 조사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작은 시골에 사는 피해자가 소문이 퍼질 것을 염려해 피해를 축소해 진술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심 재판에서도 피고인과 분리되지 않아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술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원심 파기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스스로 인정하듯 노크하거나 인기척도 하지 않고 피해자의 주거지에 찾아갔으며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았다"며 "거동이 쉽지 않은 피해자의 손목에 멍이 들 정도로 잡아끄는 등 강간의 고의성이나 강간죄에서 규정한 폭행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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