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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꼼수로 밀어붙였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5장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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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더불어민주당이 벌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 과정은 한마디로 ‘국회법을 교묘하게 이용한 꼼수의 끝판왕’이었다. 민주당은 지난 27일 새벽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기립표결로 통과시켰고, 당일 오후 검찰청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까지 마쳤다. 국민의힘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등으로 맞섰지만 ‘위장 탈당’ ‘살라미 전술’(회기 쪼개기) 등 편법을 동원한 171석의 민주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토요일엔 10시 개의 무시...박병석, 오후 2시로 결정) 박병석 국회의장이 27일 제395회 제2차 본회의 개의를 선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토요일엔 10시 개의 무시...박병석, 오후 2시로 결정) 박병석 국회의장이 27일 제395회 제2차 본회의 개의를 선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본회의 도중 임시회 공고=박병석 국회의장은 27일 오후 5시5분 본회의가 열리자마자 임시회 회기 변경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본래 5월 5일까지인 임시회 회기를 민주당 요구대로 27일 자정까지로 단축하기 위해서다. 이후 민주당은 곧바로 이달 30일 임시회 소집요구서도 제출했다.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의 5월 3일 국회 본회의 최종 처리를 위해 3일씩 역산해 일정을 잡았다. 5월 3일은 정례 국무회의가 예정된 날이다. 4월 27일 검찰청법 상정 및 필리버스터→4월 30일 검찰청법 표결 후 형사소송법 상정 및 필리버스터→5월 3일 형사소송법 표결→같은 날 국무회의 통과의 수순이다.

3일씩 말미를 둔 이유는 “임시회 요구가 있을 때는 집회 기일 3일 전에 공고한다”(국회법 5조)는 조항 때문이었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과 박 의장이 위법 소지는 피했을지 몰라도 국회 선진화법이 정한 합리적 의사진행 취지는 어겼다”고 비판했다.

(쪼개기 국회로 반발 차단...필리버스터 6시간 만에 끝)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7일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쪼개기 국회로 반발 차단...필리버스터 6시간 만에 끝)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7일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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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진 필리버스터=박 의장과 민주당의 회기 변경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회기가 끝나면 토론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국회법 106조2 8항)는 조항을 활용했다. 필리버스터 시간도 전례 없이 짧아졌다. 27일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이 상정된 직후인 오후 5시12분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여야 의원 4명만 참여해 27일 자정에 종료됐다. 6시간48분 만이었다.

이는 2019년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상정 당시 50여 시간 필리버스터에 비해 크게 줄었다. 특히 민주당은 야당이던 2016년엔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며 8일이나 필리버스터를 벌였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야당 반대를 존중한다는 필리버스터의 취지를 철저히 무너뜨린 민주당의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임시국회 빨리 개최하려 본회의 중 다음 회기 공고)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오른쪽)과 박홍근 원내대표가 27일 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임시국회 빨리 개최하려 본회의 중 다음 회기 공고)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오른쪽)과 박홍근 원내대표가 27일 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상임위 의결 당일 본회의 상정=검수완박 법안은 27일 0시 11~12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뒤 16시간55분 만인 같은 날 오후 5시7분에 본회의에 상정됐다. “상임위원회가 법률안 심사를 마친 뒤 의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한 후 1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는 상정할 수 없다”(국회법 93조의2)는 조항을 어긴 것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늘 새벽에 졸속 처리된 법안을 바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은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박 의장은 ‘의장이 특별한 사유로 교섭단체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통해 민주당의 손을 들었다.

(법사위 17시간 만에 본회의 ‘1일 후 상정’ 국회법 위배) 박광온 법사위원장이 27일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시키자 유상범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가 항의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법사위 17시간 만에 본회의 ‘1일 후 상정’ 국회법 위배) 박광온 법사위원장이 27일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시키자 유상범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가 항의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본회의 시간도 제멋대로=민주당이 회기를 쪼개는 살라미 전략을 쓰는 상황에서 검수완박 법안 2건을 처리하기 위해선 산술적으로 세 차례의 본회의가 필요하다. 첫 번째 본회의는 27일 오후 5시에 열렸고, 두 번째 본회의는 30일 오후 2시에 개의될 예정이다. 이는 ‘평일 오후 2시, 토요일 오전 10시’(국회법 72조)로 개의시(開議時)를 정한 국회법과 배치된다. 민주당은 예외조항(의장이 여야 교섭단체와의 협의로 변경 가능)을 활용했다지만 국민의힘이 본회의 개최를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민형배, 민주당 위장 탈당...법사위 안건조정위 무력화) 민형배·양향자 무소속 의원(왼쪽부터)이 지난 26일 국회 법사위 회의에 참석해 있다. 김상선 기자

(민형배, 민주당 위장 탈당...법사위 안건조정위 무력화) 민형배·양향자 무소속 의원(왼쪽부터)이 지난 26일 국회 법사위 회의에 참석해 있다. 김상선 기자

◆위장 탈당 최대 논란=검수완박 날치기 과정 중 가장 논란이 컸던 건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민형배 민주당 의원의 ‘위장 탈당’이었다.

민주당은 당초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사보임하면서 안건조정위에서 4대2 우위를 유지하려 했지만, 양 의원이 검수완박에 반대하자 지난 20일 서둘러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인 민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드는 초강수를 뒀다. “이견 조정이 필요한 안건에 대해 제1 교섭단체 소속 위원과 이에 속하지 않은 위원을 동수로 구성해 논의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을 통한 효과적인 안건 처리를 도모하려는 것”(『국회법 해설』)이란 안건조정위 취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수 규정’은 1당이 아무리 의석이 많아도 일방적인 의사진행을 하지 말라는 의미”라며 “민 의원을 탈당시키고 그를 안건조정위의 ‘제1 교섭단체에 속하지 않은 위원’으로 임명한 건 ‘변종 탈법’”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이 같은 절차적 미비를 이유로 지난 27일 헌법재판소에 검수완박 법안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대검은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검수완박’관련 법안 처리 예상 일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검수완박’관련 법안 처리 예상 일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꼼수 처리의 마무리는 청와대 몫일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5월 3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정례 국무회의를 4일로 연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김부겸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개최할 수도 있다”(원내 지도부 인사)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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