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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금리 인상만으로 풀 수 없는 경제의 3중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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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국가 경제의 중요한 목표는 경제 성장, 물가 안정, 분배 평등이다. 국가는 국민 소득을 높이고, 물가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모든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저성장, 고물가, 양극화의 삼중고(三重苦)이다. 국민의 고통이 크다.

경제의 세 가지 목표는 종종 세 마리 토끼에 비유된다. 이 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하기란 마구 뛰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것만큼 힘들다는 의미이다. 두 가지 선택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곤란한 상황을 딜레마(dilemma)라고 한다. 비슷하게 세 가지 선택이 서로 상충하는 상황을 트릴레마(trilemma), 또는 ‘3중 딜레마’라고 한다. 경제 성장, 물가 안정, 분배 평등은 3중 딜레마에 해당한다. 한 목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다른 목표 해결을 방해한다.

금리 인상해도 물가 안정 쉽지않아
저성장과 양극화 해결은 더 어려워
통화, 재정, 신성장 전략 결합하고
성장·안정·분배 함께 개선해나가야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자 한국은행이 정책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4.1% 올랐다. 2012년 이후 최고치이다. 식료품, 교통, 전기·연료, 음식·숙박 등 서민 가계에 필수적인 품목들의 가격이 특히 많이 올랐다. 물가지수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 ‘자가 주거비’를 고려하면 실제 물가는 공식 통계보다 더 오른 셈이다. 글로벌 공급병목 현상과 국제 유가·곡물 가격 상승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물가 상승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의 기대인플레이션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자율 상승이 소비·투자 심리를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부채가 많은 취약 계층의 이자 부담을 높여 소득 분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물가 안정을 위한 금리 정책이 다른 두 목표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3중 딜레마 상황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해외 공급 충격으로 물가가 오르고 국내외 불확실성이 많다. 금리 상승의 물가 안정 효과조차도 장담하기 어렵다.

3중 딜레마의 해결은 하나의 정책만으로는 풀 수 없다.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면 그물을 촘촘히 짜야 한다. 통화정책 외에도 재정·금융 정책과 공급 정책을 잘 결합하고 정책들이 시너지를 내도록 만들어야 안정적인 성장을 달성하고 소득 분배도 개선할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한국경제학회·한국경영학회·한국정치학회·한국사회학회 등 사회과학 분야의 4대 학회는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 정부의 과제’를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축사에서 “우리 사회가 무엇보다 저성장을 극복하고 양극화를 해소해나가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하면서 성장과 분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새 정부가 경제 정책의 목표와 운용 방향을 명확하게 하여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가 안정은 중앙은행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 국가의 구체적인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

4대 학회 회원들은 여론조사에서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중점과제의 첫 번째로 ‘좋은 일자리의 지속가능한 창출’을 꼽았다. 청년층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여성과 노령층이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성장과 분배를 모두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 정부가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여 민간 기업의 투자와 혁신 유인을 높이고, 노동시장의 경직된 규제를 완화하여 고용기회를 창출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사람과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유망한 신산업을 지원하는 신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신성장이 낳을 생산성 향상과 공급 증가는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여론조사에서 새 정부가 분배 개선을 등한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학회 회원들은 경제 분야에서 차기 정부가 ‘잘 못할 것 같은 정책’으로 ‘소득 불평등 축소’를 가장 많은 수(49%)로 꼽았다. 새 정부가 양극화를 해소하면서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좋은 복지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저소득층의 출산, 육아, 교육, 주거를 지원하고 지역 거점 대학과 첨단 산업을 결합한 혁신 생태계를 키우는 전략은 분배 개선뿐 아니라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고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하면 부의 평등을 개선하고 경제 성장도 촉진할 수 있다.

현재 국내외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다. 새 정부의 올바른 출발이 중요하다. 1970년대 미국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겹쳤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달러 공급을 계속 늘렸고 닉슨 행정부가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에 치중한 경제 정책을 시행하여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1979년에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는 금리를 계속 올려 물가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실업률이 11%로 오르고 경기침체가 3년 동안 계속됐다. 잘못된 경제 정책이 쌓이면 나중에 수습할 때 훨씬 큰 고통이 따른다. 새 정부가 경제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잘 세우고 실행해서 한국 경제가 3중고의 늪을 헤쳐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