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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서 공격" 여야에 다 욕먹는 권성동, 취임 18일만에 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주재한 회동에서 여야 원내대표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었다. 전날 국민의힘 최고위원회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에 대해 재논의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뒤 성사된 첫 회동이었지만, 양측은 입장 차이만 재확인했다. 지난 22일 중재안에 서명하고 기념 촬영까지 했던 두 원내대표는 4일 만에 굳은 표정으로 원점에 섰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권성동 원내대표가 모두 발언후 생각에 잠겨 있다. 김상선 기자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권성동 원내대표가 모두 발언후 생각에 잠겨 있다. 김상선 기자

약 한 시간의 회동 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합의안에 서명한 지 4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시 이런 자리가 마련돼 유감”이라며 “추가로 합의된 사항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 합의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고, 박 의장께 내일 반드시 본회의를 소집해야 한다는 요청을 드렸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우리가 왜 재논의를 요청했는지 설명했고, 박 원내대표가 민주당 입장을 이야기해서 잘 들었다”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검수완박 입법폭주 중단하라'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검수완박 입법폭주 중단하라'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협상이 불발되자 국민의힘 측은 오후 4시부터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권 원내대표는 “(중재안) 처리 과정에서 저의 판단 미스와 그로 인한 여론 악화를 당에 지우고 여러분께 책임을 전가해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여야가 합의했더라도 국민에게 수용되지 않으면 당연히 재논의하고 국민의 뜻에 맞춰가는 것이 정치권의 책무”라며 “동료 의원들의 중지를 모아 민주당과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이 논리적 근거 없는 협상 시한을 정해 놓고 강박 속에서 이뤄진 협상이었다”며 “(앞선 중재안) 협상은 실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의총에서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권 원내대표는 “선거 범죄와 공직자 범죄가 검찰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한 합의 처리할 수 없다”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나오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등 국회법이 정한 절차와 수단을 모두 사용하겠다는 것이 의총 결과”라고 밝혔다.

“사방에서 공격” 취임 직후 책임론 마주한 권성동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나오면 필리버스터 등 국회법이 정한 절차와 수단을 모두사용한다는 것이 의총 결과"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나오면 필리버스터 등 국회법이 정한 절차와 수단을 모두사용한다는 것이 의총 결과"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우여곡절 끝에 당의 투쟁 대오를 가다듬었지만, 권 원내대표는 선출 뒤 3주도 안 된 시점에서 위기에 봉착했다. 당 관계자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과 비난을 권 원내대표가 홀로 맞고 있다”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앞으로 다가온 각종 인사청문회 및 정부조직법개편안 등 법안 처리도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당 밖에서는 171석 민주당이 중재안 강행처리를 예고하며 국민의힘을 완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국민의힘 측이 재논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권 원내대표가 직접 서명했던 중재안을 스스로 뒤집은 모양새가 되면서 대응 동력을 일정 부분 상실했다는 평가다.

당 내부에서도 권 원내대표를 향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지층은 중재안 합의 직후 “권 원내대표가 검수완박에 동조했다”고 비판했고, 재논의 결정 뒤에는 “섣부른 중재안 합의로 당이 난감해졌다”고 격하게 반응했다. 야권 관계자는 “중재안에 합의하지 않고 계속 맞섰다면 오히려 지방선거 전 민주당의 폭주를 부각할 기회였는데, 합의 후 뒤집기에 나서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대선 기간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으로 불렸던 권 원내대표가 시작부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미스 커뮤니케이션’ 논란을 빚은 것도 뼈아픈 부분이다. 여야 합의 뒤 윤 당선인이 중재안에 우려를 표하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자 일부 인사들은 “당선인과 원내대표의 소통이 원활치 않은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했다.

장제원 “방송 통폐합과 뭐가 다른가” 權 지원 사격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다만 이날 윤 당선인 측은 사면초가에 몰린 권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먼저 윤 당선인과 권 원내대표가 지속해서 소통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배현진 대변인은 “중재안 합의 당일 윤 당선인이 부산 일정 중에 전화 통화로 (권 원내대표로부터) 보고를 들었다”며 “‘합의 과정과 결정의 모든 몫은 국회와 당에 있고, 알아서 잘 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전날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윤 당선인과 권 원내대표가 30분간 면담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잠시 동안 방문해 말씀을 나눈 것으로 확인했다” 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중재안이 재논의에 이르게 된 상황에 대해 두루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중재안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권 원내대표를 지원 사격했다. 장 비서실장은 “중재안이 권위주의 시절 방송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방송을 통폐합한 것과 뭐가 다르냐”며 “형사사법 체계를 흔들어 놓는 것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에 졸속으로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문 대통령을 향해서는 “중재안이 검찰을 무력화하고 수사권을 빼앗아 버리는 것에 대해 잘 판단하고 거부권을 행사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중재안에 대해 “박 의장 중재로 양당 간 합의가 잘 됐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날 비공개 의총에서는 윤 당선인의 수행팀장인 이용 의원이 제일 처음 단상에 올라 “권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초선인 이 의원이 적극적으로 권 원내대표를 엄호하는 목소리낸 것을 두고 당내에서는 “윤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는데, 당 관계자는 “이 의원이 소신에 따라 발언한 것으로 한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이 27일 본회의 개최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중재안 처리를 막을 물리적 수단이 없다”는 탄식도 나온다. 중재안이 강행 처리돼 여야가 강 대 강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면 향후 인사청문회 등에서 민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힘들다는 것도 국민의힘 측의 고민거리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민 여론에 호소해 중재안의 문제점을 알리는 것이 최선의 대응 방안”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도 마냥 입법 독주를 고수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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