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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도 '검수완박' 반대…"공판 통한 정의 실현 부정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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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3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화상으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3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화상으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과 관련해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법 개정 조항마다 문제가 있어 추가 검토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보완이 필요하다’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검찰과 마찬가지로 ‘검수완박’ 강행에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경찰에게 이관되는 수사권에 대한 견제 필요"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39페이지 분량의 '형사소송법·검찰청법 일부 개정 법률안(박홍근 의원 발의) 검토 의견'에서 “개정안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취지라면, 검사의 수사권을 분리하는 것 못지않게 분리돼 경찰에게 이관되는 수사권에 대한 기관 사이의 견제와 통제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의 과잉 수사나 부실 수사 등의 위험을 적절히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면 이는 결국 법원의 공판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공판을 통한 정의의 실현’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수사권과 기소권 사이에 실질적으로 적절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추가로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와 같은 더불어민주당의 2주 안 강행 처리 방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같은 검토 의견은 전날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에 출석해 “안건을 저희가 급히 검토했지만 검찰 권한을 거의 경찰로 주고 있다. 이런 입법은 저는 못 본 것 같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검수완박' 입법 관련 4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검수완박' 입법 관련 4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검찰은 사실 확인할 때도 경찰에 보완 요구해야"

법원행정처는 ‘구체적 의견’을 통해 개정안의 13개 법 조항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먼저 경찰의 수사 권한이 대폭 확대되는데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점을 짚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찰에 기소와 공소유지, 영장 청구·집행에 관한 권한만 가지도록 했다. 경찰에는 원칙적으로 수사권을 주고, 일정한 경우에만 검사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행정처는 “사법경찰관의 부실수사 내지 소극적인 수사가 있을 경우 검사가 보완 수사 요구를 통해 적절하게 개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가형벌권이 엄정하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없는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또 검사의 경찰에 대한 시정조치 요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 했던 ‘송치 요구’ 규정을 삭제하고, 검사는 경찰의 신청이 있을 때만 영장을 청구하도록 규정했다. 행정처는 “검사가 송치된 사건의 기록 검토 과정에서 추가로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고, 피의자를 구속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경찰에 보완 수사 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며 “사법경찰관의 소극적인 수사에 충분한 견제 장치가 있는 것인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고소인 등이 이의신청을 할 때만 검사가 보완 수사 요구를 할 수 있게 되는 점에 대해서는 “고소인 등의 법률적 지식이 부족하거나 여러 여건이 불비해 이의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며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불송치 사건의 범위를 더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행정처는 또 경찰의 위법한 체포·구속에 대한 검사의 석방명령권, 송치명령권을 삭제한 점에 대해선 “체포·구속에 대한 검사의 인권 보호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박주민 법사위 제1소위원장이 18일 저녁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등 '검수완박' 관련 법안을 심사할 법사위 제1소위원회 회의를 개회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박주민 법사위 제1소위원장이 18일 저녁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등 '검수완박' 관련 법안을 심사할 법사위 제1소위원회 회의를 개회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검찰의 구속 영장 직접 청구 막고, 압색 영장도 경찰 맘대로" 

구속 영장을 검사가 직접 청구하지 못하고 경찰의 신청을 받아 청구하도록 한 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행정처는 “검사가 사건을 송치받아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 등으로 피의자 신병을 신속하게 확보해 둘 필요가 있는 사건에서도 신속하고 적정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며 “이 같은 경우 사건이 송치된 이후 검사가 직접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규정을 둘 필요는 없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또 압수수색영장 청구의 주체를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서 ‘사법경찰관’으로 바꾸게 돼 있다. 이에 대해선 “경찰이 검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사후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것처럼 돼 있다”며 “수사단계 압수수색영장의 발부를 검사의 신청에 의하도록 하는 헌법 조항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행 중인 사건도 경찰에 넘겨야…사건 처리에 지장"

행정처는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해당 사건을 접수한 지검 또는 지청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경찰청이 승계하게 하도록 규정한 개정안 부칙 2조에 문제도 짚었다. 이 조항이 적용되면 현재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은 모두 경찰로 넘어간다. 또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추가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가능성이 있는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로비 의혹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등에서 추가 혐의·단서가 나와도 검찰은 수사할 수 없다. 행정처는 "검찰로 송치돼 공소제기 여부 판단만 남은 사건, 구속 기간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사건도 일괄 승계돼 효율적이고 적정한 사건 처리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법 시행 후 개시되는 사건부터 개정법을 적용하도록 수정할 필요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개정안의 시행일을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로 정한 부칙 1조에 대해서도 "개정안은 형사사법 체계의 큰 변화를 초래하는 제도로 검·경의 조직, 인적·물적 여건에 대해서도 상당한 변화와 준비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적어도 6개월 내지 1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개정안 시행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행정처는 검사의 직무와 권한을 규정한 검찰청법 개정안 4조에서 '범죄수사'를 삭제하고 '다만, 수사는 제외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개정안 내용에 대해서는 법률 정합성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구속 사유 없어도 검사가 구속 취소 못 해…인권옹호 약화"

행정처는 이날 법사위에 추가 검토의견까지 냈다. 행정처는 법원의 구속에 관한 규정에서 검사를 삭제한 개정안과 관련해 "이에 따르면 검사가 구속 사건을 송치받은 단계에서 구속 사유가 없거나 소멸된 때 또는 구속집행정지 사유가 발생했을 때도 검사가 직권으로 구속을 취소하거나 그 집행을 정지할 수 없게 된다"며 "이 경우도 검사의 인권 옹호 기능 수행이 약화되는 것은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외 입법례까지 소개한 행정처…검찰이 수사권 없는 국가 없어

행정처는 또 수사권 관련 미국·독일·일본·프랑스의 해외 입법례도 소개했다. 국가별로 수사권 분장 내용이 다르지만, 검찰에 수사권이 아예 없는 경우는 없었다.

미국의 경우는 경찰이 독자적인 수사개시·진행권, 체포영장청구권, 경미사건의 수사종결권 등을 가지고 있지만, 연방 및 일부 주의 검사는 중요범죄에 대해 직접 수사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독일은 경찰이 검사의 개입 여부를 기다릴 필요 없이 주도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지만 검찰이 독점적 영장청구권과 수사종결권을 갖는다. 일본도 사법경찰직원이 1차적·본래적 수사권을 가지고, 검찰관은 2차적·보충적·보정적 수사권을 가진다고 한다. 프랑스는 검사가 수사의 주재자로 범죄수사권을 가지고 사법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지만, 수사 단계에서 활동하는 예심판사가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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