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르펜 당선 땐 푸틴 큰 힘" 박빙 佛대선, 세계가 조마조마

마린 르펜(국민연합) 프랑스 대선 후보. [AFP=연합뉴스]

오는 24일(현지시간) 치러질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45·전진하는 공화당) 대통령과 극우파 마린 르펜(54·국민연합) 후보의 접전이 예상되면서 서방이 긴장하고 있다.

헝가리와 세르비아에서 친(親)러시아 정권이 재창출된 데 이어 프랑스에서 르펜 후보까지 당선되면,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된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르펜 후보는 탈(脫)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탈 유럽연합(EU)을 지향한다. 때문에 만약 르펜 후보가 당선돼 프랑스가 나토를 탈퇴할 경우 서방의 안보 체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 탈 EU 지향 정책으로 유로화가 타격을 입으면 세계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지난 10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개표율 99% 기준)에선 마크롱 대통령은 27.6%, 르펜 후보는 23.4%를 각각 득표했다. 4.2%포인트 박빙의 격차였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조사 결과(8일 기준) 결선투표 예상 지지율은 마크롱 52%, 르펜 48%로 각각 나타났다.

WP "美·유럽의 대러 제재 르펜 부상 돕는 역설"  

11일 워싱턴포스트(WP)는 ‘프랑스는 푸틴과의 전쟁에 새로운 전선’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르펜의 승리는 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푸틴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전히 르펜이 당선될 가능성은 낮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과 유럽의 대러 제재가 식료품 가격과 유가 상승을 견인해 르펜의 부상을 돕고 있다면서다.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해 외교에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르펜 후보는 국내를 돌며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등 민생과 인플레이션 대처를 공약해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WP는 “르펜 후보가 친서민 행보를 하는 동시에 친러 이미지를 지우려 해도, 그가 속한 당의 기원이 극단주의 민족전선이란 얼룩을 씻을 수 없다”며 “국민연합이 2014년 러시아 은행으로부터 900만 유로(약 120억원)를 대출받은 사실, 과거 푸틴 대통령의 악수 사진을 르펜 후보 홍보 전단으로 쓴 사실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 “르펜 나토 탈퇴 공약, 특별한 우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런 점에서 르펜 후보의 ‘나토 탈퇴’ 공약은 특별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전했다. 서방의 안보 체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다.

폴리티코는 또 르펜 후보가 5년 전 대선 때와는 달리 ‘프렉시트(Frexit·프랑스의 EU 탈퇴)’를 공약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그가 내건 공약들은 ‘이름만 뺀’ 프렉시트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국경을 강화하고 솅겐조약을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솅겐조약은 유럽 내 26개국 시민들이 비자나 여권 없이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로 한 협정이다.

르펜 후보는 5년 전과 달리 유로화 탈퇴는 공약하지 않았지만, 그가 당선되면 유로화 약세도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노무라홀딩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르펜 후보 당선 시 유로화는 현재 약 1.09달러에서 1.05달러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FT는 “시장은 얼마 전까지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을 예측했지만, 최근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면서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폴리티코는 “르펜 후보의 승리 시 EU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폴란드에서 미국까지 아우르는 친우크라이나 연합을 크게 흔들고 장기적으로는 유럽 대륙의 정치 지형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