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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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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두 이야기로 구성된다. 1부에서 함춘수(정재영)는 혼자 수원에 갔다가 윤희정(김민희)을 만나고, 호감을 얻으려 노력하지만 뒤늦게 유부남이라는 게 들켜 관계가 끝난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2부에선 함춘수가 윤희정에게 결혼 사실을 미리 알린다. 희정은 춘수에게서 반지를 받고, 좋은 관계를 맺는다.

홍 감독의 제작 의도와는 무관하게 어쨌든 춘수의 행동은 1, 2부 모두 불륜이다. 유부남임을 숨기고 한 불륜(그때)과 알리고 한 불륜(지금)의 차이다. 대다수는 그때와 지금이 모두 틀렸다고 받아들인다. 애초 틀린 건 어느 시점이든 틀리다.

연초 서울 명동의 한 건물에 통임대·매매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연초 서울 명동의 한 건물에 통임대·매매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7년 전 영화 얘기를 꺼낸 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또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합리화가 자주 보여서다. 지난달 29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금 확진자 수가 전 세계에서 제일 많지만, 어느 나라든 다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며 “우리는 확산이 늦게 왔다. 당장의 숫자만 놓고 방역 실패니 하는 말은 우리 국민을 모욕하는 말”이라고 했다. 일일 확진자 수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간하는 주간 코로나19 현황을 보면 지난달 21~27일 전 세계 확진자의 22.6%가 한국에서 나왔다. 이때 국내 확진자 수는 244만2195명으로, 4주 연속 전 세계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나라가 됐다. 증가 추이를 고려하면 1주일 후 한국은 누적 확진자 수 8위에 오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2월 “방역에 있어 모범국가로 불릴 정도로 잘 대응했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6월엔 “세계 각국이 한국의 방역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때 확진자 수가 다른 나라보다 적다는 이유로, K방역은 자랑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1월 8일 페이스북에 “J방역이 K방역보다 우수하다고 헛소리하던 언론과 자칭 전문가들은 이제 뭐라 할까”라고 썼다. 일본의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6000명이라는 기사를 공유하면서다. 불과 2달 전이다. 6000명은 국내 전문가를 조롱하고 K방역을 옹호하는 근거였다.

희생은 자영업자와 국민의 몫이었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에 대출금을 더해 2019년 술집을 차린 친구 A는 매주 거리두기 단계에 마음 졸이다 지난해 폐업했다.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폐업 점포 재도전장려금’ 신청자는 30만 명이 넘는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폐업 소상공인이 30만 명 이상이란 뜻이다. 그들 중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김 총리 말대로 “어느 나라든 겪었어야 하는 일”이었다면 생활고에 목숨까지 끊은 이들의 고통이 무색해진다. 어제의 확진자 수가 자랑의 근거였다면 지금은 부끄러움이어야 한다. 정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