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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尹 '전기료 동결' 공약에…발전소 줄돈 줄여 한전 적자 메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한국전력이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사들이는 가격의 상한을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치솟은 연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발전소에 줄 돈을 줄여, 한전 적자를 메우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조치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공약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치솟는 연료비 “전력구입비 제한”

1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발전소에 전력을 사들이는 가격이 일정 금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의 한전 규칙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전력도매가격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력도매가격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현행 제도상 한전은 생산 원가가 가장 높은 발전기의 가격인 ‘전력도매가격(SMP)’ 기준으로 전력을 사들인다. 예를 들어 원자력·석탄·LNG(천연액화가스) 발전소에 동시에 전력을 구입 해도, 가장 비싼 LNG 발전소 가격을 기준으로 전체 전력 구입 가격을 정산한다. 이 때문에 최근 같이 LNG 비용이 치솟을 때는 한전의 부담이 커지고, 저렴한 연료원을 쓰는 발전소의 이익이 늘어난다. 특히 발전 원가가 거의 없는 신재생에너지는 SMP에 보조금까지 더 얹어 전력을 구입해 주고 있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보존해 준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전력 구입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상한가격을 두겠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월 평균 SMP(197.32원/㎾h)는 지난해 2월(75.44원/㎾h)보다 161.5% 급등했다. 연료비 부담이 늘어도 전기요금을 쉽게 올릴 수 없는 한전은 이 비용을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다. 한전 적자 폭이 올해 10~20조원이 될 거란 분석까지 있다.

발전사 줄 돈 줄여 전기요금 동결?

지난 1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력정산가격 상한제 검토가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내건 윤 당선인의 공약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정부는 최근 유가 상승 요인을 반영해 다음 달과 10월 두 차례에 나눠 기준연료비를 킬로와트시(㎾h) 당 9.8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최근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오는 21일 공개 예정인 2분기 전기 요금을 추가로 올려야 할 처지다. 정부 관계자는 “연료비가 너무 많이 올라 전기요금 인상이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당선인이 공약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관련 내용을 논의해 볼 것”이라고 했다.

연료비 상승으로 한전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일부 예고한 전기요금 인상을 무작정 백지화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력정산가격을 제한해 발전사 이익을 줄여, 한전의 적자를 일부 보전해 준다면 당장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순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특히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그동안 정부가 관련 비용을 과도하게 보전해 줬는데, 가격 제한으로 이 부분을 줄이면 한전 부담도 다소 덜 수 있다”고 했다.

민간 에너지 업계는 피해 ‘직격’

문제는 전력정산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가뜩이나 힘든 민간 에너지 업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공기업 발전사는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나중에 이를 보전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민간 발전사는 이런 보호 장치 없이 전력을 파는 가격만 제한되기 때문에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팔아야 할 수도 있다. 민간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한전 적자가 커졌다고 전력 구입비용을 제한한다면, 민간 발전사 적자도 같이 보전하는 방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연료비용에 맞춰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등 에너지 공공요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력정산가를 제한하는 것은 발전사 이익을 깎아 한전의 적자를 보전하는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런 방식의 적자 보전책도 없는 민간 에너지 업계는 타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민간 사업자가 많은 집단에너지협회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열 병합발전 연료비가 열 판매단가를 추월했다. 정부 요금 제한에 묶여 손해를 감수하고 원가 이하로 팔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중소 발전사인 A사와 B사는 지난달 영업이익이 각각 21억과 20억 적자를 봐 도산 우려까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올라 힘든 민간업체에 가격 제한까지 하면 피해를 감당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면서 “결국 새 정부에서도 에너지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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