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기자가 본 서울/조선통신 리충국논설위원 인상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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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따듯한 환영없어 매우 섭섭”/18년 만에 또 발길… 많이 변했다/시민들 가정 직접 찾아가 얘기했으면…
분단 45년 만에 국내신문으로는 처음으로 북한기자의 기고를 싣는다. 남북통일축구 서울대회를 취재하러 서울에 온 북한조선통신 논설위원 리충국 기자(58)는 중앙일보의 요청에 따라 「서울 인상기」를 구술해 왔다. 판문점에서 숙소로 가는 도중 버스에서 내다 본 서울거리와 만찬참석에서 느낀 소감을 간략히 쓴 글이지만 북한기자가 한국언론에 직접 기고를 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또 한가지 형태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의미가 있다.<편집자 주>
18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이었다.
이번 서울방문이 벌써 세번째다.
지난 72년 남북적십자실무회담 취재차 서울에 두 번 왔었는데 벌써 18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당시만해도 나는 38세의 한창 젊은 통신기자였다.
이제 반백의 나이로 다시 서울을 찾은 지금,유수같이 흐른 세월이 무상할 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다.
설레는 가슴으로 서울에 와 긴장이 풀리지 않은 탓인지 아직은 서울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판문점을 떠나 통일로와 한강변의 올림픽도로를 지난면서 다시 찾은 서울의 모습은 확실히 옛날과는 달랐다.
내가 당시 머물렀던 곳은 타워호텔이었다.
당시 워커힐도 있었지만 타워호텔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고층건물이었다.
그 당시 서울을 마음껏 구경하지는 못했으나 워커힐 맞은 편은 논밭투성이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답답할 정도로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
서울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케 해주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판문점에서 서울로 진입할 때 수많은 인파가 우리를 환영하리라 기대했는데 주민의 환영열기가 없어 매우 섭섭했다.
일요일 탓이었을까. 아니면 당국의 통제 탓이었을까.
서울은 한마디로 「붐비는 서울 속의 한산한 거리」였다.
평양에서 통일축구가 열렸을 때만해도 우리 인민들은 남조선 축구선수단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런데 서울시민들은 예상 밖으로 환영열기가 적어 실망했다.
그러나 나는 차창으로 보이는 서울시민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오늘 오후에는 통일축구경기가 열릴 잠실 주경기장을 찾았다. 잔디나 시설은 좋아 보였으나 규모는 평양 5ㆍ1경기장의 절반만 했다. 저녁에는 김우중 축구협회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 만찬은 우리가 평양에서 남조선 선수단에 베푼 만찬과 너무 달라 섭섭하기까지 했다.
평양에서는 기자는 기자끼리,선수는 선수끼리,체육인사는 체육인사끼리 특성에 맡게 앉혀 서로 즐겁게 얘기하며 웃음의 꽃을 피우도록 했는데 이날 만찬은 늙은이와 처녀를 서로 섞어놔 얘기 한마디 못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평양에서는 참석자들이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위하여』 『조국통일』을 외쳤는데 서울만찬은 딱딱하기만 했다.
서울에서는 젊은 여자들이 식사를 갔다주면 그저 따라 식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을 뿐이다.
비록 짧은 4박5일이지만 기회가 나면 서울시민의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
서로의 차이를 해소하려면 될 수 있는 한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상간에 만나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눈다면 그동안 두껍게 쌓인 불신의 벽도 허물 수 있다고 생각하다.
조국통일의 염원을 안고 서울에 온만큼 하나의 작은 흔적이나마 남기고 싶다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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