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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체포에 괴뢰 정부 수립 투표...점점 사라지는 우크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친러시아 괴뢰 정부가 들어설 조짐이다. 반기 들던 시장은 체포하고, 주민 투표로 공화국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멜리토폴 시민들이 12일 이반 페도로프 시장을 석방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멜리토폴 시민들이 12일 이반 페도로프 시장을 석방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BBC, CNN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주(州)의 멜리토폴시(市)에 친러 성향인 새로운 시장이 선임됐다. 러시아군은 전 시의회 의원이었던 갈리나 다닐첸코를 시장으로 임명해다고 외신은 전했다. 다닐첸코는 이날 현지 방송에 출연해 "멜리토폴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행정적 책임을 질 인민대표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면서 "극단주의적 행동으로 불안정한 상황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도발에 움직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멜리토폴시는 지난달 26일 러시아군에 함락된 후, 시민들의 저항 시위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특히 이반 페도로프 시장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중앙 광장에서 사수하는 등 "러시아군에 어떤 식으로든 협력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강조하면서 러시아군의 눈엣가시가 됐다. 결국 지난 11일 러시아군에 체포됐다.

러시아군이 지난 11일 이반 페도로프 멜리토폴 시장을 체포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왼쪽 위에 군복을 입은 무리에서 검은 형체로 보이는 사람이 페도로프 시장으로 추정된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지난 11일 이반 페도로프 멜리토폴 시장을 체포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왼쪽 위에 군복을 입은 무리에서 검은 형체로 보이는 사람이 페도로프 시장으로 추정된다. 로이터=연합뉴스

안톤 헤라시첸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보좌관은 "멜리토폴에서 적군에 협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침략자들이 페도로프 시장 머리에 검은 비닐봉지까지 씌워 체포했다"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페도로프 시장은 친러 세력이 장악한 루한스크의 검찰청에 테러 혐의로 기소됐다.

페도로프 시장의 석방을 위해 수백명의 시민들이 나서서 시위를 벌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는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정상들에게 "페도로프 시장의 석방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지난 2일 헤르손시가 함락되면서 러시아군이 완전히 장악한 남부 헤르손주에선 헤르손 인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주민 투표가 추진되고 있다. BBC에 따르면 헤르손주 의회 유리 소볼레프스키 부의장은 12일 "헤르손주에 인민공화국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면서 "헤르손주는 우크라이나의 필수 지역이다. 긴급회의에서 헤르손주가 우크라이나로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러시아가 헤르손에서 '가짜 인민공화국'을 위한 '가짜 국민투표'를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가짜 공화국을 만드는 슬픈 경험을 반복하려고 한다"고 했다.

앞서 러시아는 2014년 남부 크림반도 점령 때도 주민 투표를 시행했다. 당시 러시아는 "96.8%가 러시아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며 크림반도를 러시아의 영토로 귀속시켰다. 2014년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도 전쟁을 일으키고 친러 반군 세력이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해 주민 투표를 했다.

무력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거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자발적으로 러시아를 선택했다는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민 투표를 이용했다. 헤르손주에서도 격렬한 저항 시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러시아군이 친러 인사로 새로운 집행부를 꾸려 주민 투표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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