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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수인의 교육벤처

아이들이 줄어드는 시대의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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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수인 에누마 대표

이수인 에누마 대표

2021년의 출생아 수가 26만명이라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10년 만에 출생아 수가 다시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교육 회사의 입장에서는 잠재고객의 숫자가 매년 줄어드는 상황이다보니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장을 분석하다보면 부모들이 사교육에 돈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있던 나라들에서 예외없이 아동 인구가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일본 등 경쟁적 입시 문화를 가지고 빠르게 경제 발전을 이룩했던 아시아 지역들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다툰다. 지난 10년에 걸쳐 이 지역의 출생아 숫자가 모두 절반으로 줄어들었는데, 높은 사교육 부담과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 발전에 이어 급격한 속도로 사교육 과열과 출산율 저하를 맞닥뜨린 중국은 작년에 매우 높은 수준의 교육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사교육 제공 금지와 학습시간 제한이라는 충격적인 조치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유럽식 제도를 모델로 한다는 공교육의 개선 방향을 지켜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창의적 사고를 강조하는 유럽식 교육에 새삼스레 눈이 가는 것은 최근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지식 자체보다는 이를 사용하는 방법, 즉 정보의 분석과 창조적·협력적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춘 21세기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교육 시스템을 개선한 핀란드·에스토니아·캐나다 등의 국가들은 융합형 과목을 도입하고 문제해결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바꾸었는데, 과도한 학습 부담이 없으면서도 최근의 OECD 국제 학력평가에서 한국 아이들 못지않은 성적을 내고 있다. 당장은 코로나19로 발생한 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이 먼저겠지만, 코로나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사회 구조의 변화와 미래 세대의 삶의 방식을 상상해보고 교육의 지향점과 경쟁력을 다시 짚어볼 때다.

아이 한명 한명이 소중한 시대
미래 세대의 잠재력 극대화하는
근원적 교육 혁신을 생각해야

교육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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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에 초점을 맞춘 교육의 폐해는 꾸준히 지적되어왔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극대화해서 국가의 인적 경쟁력을 빠르게 높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세기를 이어온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재고해야 한다. 적은 수의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다. 아이들의 숫자가 적어서 대학에 들어가기도 어렵지 않고 완전고용도 이루어질테니 공부를 적당히 시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출생률과 인구변화를 비관적으로 예측하면 새로 태어나는 세대의 노동인구 한 명이 은퇴한 노인 인구 네 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계산까지 있다. 그러니 기성세대보다 훨씬 혁신적이고 효율이 높은 세대를 길러내는 교육이어야만 한다.

시험 성적을 중심으로 줄을 세우는 교육제도는 지속적으로 변화에 적응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에 좋은 방법이 아니다. 창의적인 해결을 도모하기보다는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정답을 맞추는 성향에 유리하고 협력보다는 경쟁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지식 전달의 효율을 높이고, 협력형 수업과 융합 과목을 도입해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가르쳐야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할 인재들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사교육에 맡겨져있는 개인의 잠재력 개발을 공교육 중심으로 바꿔서 최대한 많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한 명 한 명이 귀한 아이들이 높은 등록금 때문에, 가정 사정 때문에, 필요한 도움을 제때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큰 손실이다. 또한 대학 교육에 맞지 않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술과 직업을 탐색할 기회를 주고 소질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도 공교육의 울타리에서 해내야 할 일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제 해결 방식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이들만의 숙제가 아니다. 그들을 위해 교육 시스템을 상상하고 개혁하는 것은 지금의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입시와 사교육에 왜곡된 교육의 관점을 바꿀 때다. 학생들간의 경쟁보다는 협력을 장려하고, 세대 전체의 지식 습득의 효율을 높이고, 누구든지 잠재력에 걸맞은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진 공교육의 모습을 디자인해보자. 이 전환에 성공한다면 학생들은 더 도전적인 청소년기를 경험할 여유가 생기고 부모에 강요되던 교육비 부담이 없어질 것이고, 적은 수의 젊은이들이 만들어나갈 미래의 한국 사회의 경쟁력이 지금보다 나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더 좋은 교육이고 더 좋은 출산율 대책이 아닐까.

이수인 에누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