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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아무도 원치않는 전쟁은 왜 일어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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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 21일 푸틴(왼쪽) 주재로 열린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이례적으로 국영방송에 중계됐다. 서방국가들에겐 매우 충격적인 블랙코미디였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푸틴(왼쪽) 주재로 열린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이례적으로 국영방송에 중계됐다. 서방국가들에겐 매우 충격적인 블랙코미디였다. 연합뉴스

1. 러시아 국민들조차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원치않는다는 보도가 눈에 띕니다.
NYT(뉴욕타임즈) 24일자에 따르면..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병합할 당시에 환호했던 러시아 국민들도 이번엔 고개를 젓는다고 합니다.

2. 크림반도는 러시아인들 상당수가 휴양지로 다녀온 경험이 있는 친근한 땅이고, 실제 러시아계가 다수였고, 지역주민투표에서 90%가 러시아 합병을 찬성해 무력충돌없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다른 민족이며. 친서방 성향이며, 영토사수를 다짐하고 있기에 상당한 유혈사태가 불가피합니다.

3. 그런데 왜 전쟁이 터졌을까?
지난 21일 푸틴이 주재한 국가안보회의가 설명해줍니다. 안보회의가 국영TV로 중계되는 것 자체가 없던 일입니다. 한편의 블랙코미디였습니다.

무대부터 이색적입니다. 원형기둥으로 둘러싸인 백색 공간 한쪽 편에 푸틴이 책상을 두고 앉아있습니다. 아득한 반대편에 고위관료들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고, 그들 앞쪽에 연단을 설치했습니다.

4. 푸틴은 관료를 한명씩 연단으로 불러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국가 독립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마치 숙제검사하는 선생님처럼..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찬성. 이들 친러시아국가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니아 침공을 하려던 생각이었으니까요.

5. 푸틴은 지루한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가 날카롭게 끊고 들어갑니다.

해외정보책임자가 ‘지지할 겁니다’라고 말하자 곧바로 ‘지지할 거라는 거야, 지지한다는 거야, 정확하게 얘기해’라고 질책합니다. ‘지지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알았어 들어가 앉아’라고 말합니다. 결론은 ‘오늘중 결정한다’입니다. 중계 끝.

6. 결론은 푸틴 혼자 결정한 겁니다. 그럼 푸틴은 왜?

전쟁에 대한 주요이론들이 모두 적용가능합니다. 첫째, 인간은 본래 공격적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홉스가 가정한 원시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입니다. 국제정치는 원시자연상태와 같기에 ‘모든 국가의 모든 국가에 대한 투쟁’상태입니다.

7. 둘째, 근대이후 전쟁의 최대원인은 배타적 민족주의입니다.
푸틴은 전쟁명분으로 ‘대 러시아’를 강조합니다.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러시아의 중심이었습니다. 불과 30년전 구 소련의 붕괴로 서방에 뺏긴 영토를 되찾자는 겁니다. 민족주의 구호 아래 벌어지는 전쟁은 내부단속에 효과가 있습니다.

8. 셋째, 국민적 지지 없는 전쟁이 가능한 것은 독재이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평화의 결정적 요건으로‘시민의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자유로운 시민이라면 스스로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악의 게임을 시작하자는데 매우 망설일 것이다. 반대로 시민의 동의가 필요없는 국가라면 전쟁을 일으키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 ’

9. 러시아는 ‘제국주의와의 투쟁’이 진정한 해방의 길이라고 가르친 레닌의 나라입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레닌이 만든 나라’며 ‘고르바초프가 제국주의 미국에 뺏긴 나라’이고 ‘미국의 꼭두각시가 된 나라’이기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1일 ‘레닌의 동상을 끌어내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자국의 존재근거를 지워버렸다’고 경고했습니다.
소련제국의 부활입니다.
〈칼럼니스트〉
2022.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