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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 제정에 주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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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지난해 12월 23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 의회를 통과한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Uyghur Forced Labor Prevention Act:UFLPA)’에 서명했다. 간단히 말하면 중국 위구르 자치지역에서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상품이 미국으로 반입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동 법안은 지난 2년 가까이 의회에서 논의되어 왔으며 최근에 여야의 압도적인 지지로 상·하원을 통과했다. 미국이 중국의 위구르 자치지역에서 강제노동행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무역조치를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동 법은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오는 6월 22일 발효될 예정이다.

미국은 이미 1930년 제정된 관세법 307조를 통해 외국에서 강제노동에 의해 채굴·제조 또는 생산된 물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동 법은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으며 그동안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관세국경보호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일부 상품이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으로 판단해 반입 보류명령을 내리는 사례가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견제에 총력을 쏟고 있는 미국이 강제노동 이슈를 제기해 중국을 추가적으로 압박하는 법을 제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 위구르 인권문제로 중국압박
강제노동 상품규제 움직임 확산
제3국 통한 대미 우회수출도 금지
기업, 위구르 리스크에 대비해야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은 기존의 관세법과 비교해 두 가지 측면에서 더 강화되었다. 첫째, 기존의 관세법은 강제노동이 개입되었다고 판단되는 상품에 대해서만 미국반입을 금지하는 반면 새로 제정된 법은 중국 위구르 자치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의 미국 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즉 미국은 위구르 자치지역에서의 상품 생산과정에 어떤 방식으로든 강제노동이 개입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둘째, 과거에는 위구르 자치지역에서 반입하려는 특정 상품의 생산에 강제노동이 개입되었는지 여부를 정부(관세국경보호청)가 주도해서 판단했다. 그러나 새 법에 의하면 위구르 자치지역에서 생산된 특정상품을 미국으로 반입하기 위해서는 원자재와 부품을 포함해 동 상품의 모든 생산과정에 강제노동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수입업자가 정부에 증명해야 한다. 그만큼 입증책임에 따른 수입업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위구르 자치지역의 강제노동에 대한 우려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대부분의 선진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기본적으로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상품이 EU 역내로 수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회원국의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며 일부 회원국은 위구르 자치지역만을 대상으로 무역제한조치를 취하는 것은 ‘비차별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캐나다와 호주는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과 비슷한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위구르 자치지역의 강제노동에 대한 주요 선진국의 입장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강제노동이 개입된 상품의 수입제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 이행을 준비하면서 생산과정에 강제노동이 개입될 가능성이 큰 상품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동 리스트에는 과거에 미국으로의 반입이 보류된 적이 있는 면화와 토마토 외에 폴리실리콘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실리콘은 반도체 웨이퍼와 태양전지의 태양광패널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핵심 원재료다. 세계 폴리실리콘 생산의 50% 가량이 위구르 자치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만큼 동 지역에서 생산된 폴리실리콘의 수입이 어려워질 경우 미국에서 태양광패널을 만드는 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렇듯 자국의 태양에너지 산업에 피해가 생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을 예정대로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 제정과 다른 선진국의 강제노동 규제 움직임은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동 법은 위구르 자치지역에서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상품이 한국과 같은 제3국으로 들어와 추가로 가공, 제조 또는 조립된 경우에도 미국으로의 반입을 금지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기업이 위구르 자치지역에서 원자재나 부품을 들여와 만든 상품의 대미 수출이 막힐 수 있다. 둘째, 위구르 자치지역의 강제노동 규제를 주도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우리나라에도 이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가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도 이러한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와 태양에너지 관련 기업은 차제에 위구르 자치지역의 강제노동이 가져다줄 수 있는 리스크를 감안해 원료·중간재·부품 등의 기존 공급망을 재검토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보다 안정적인 조달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위구르 자치지역으로부터 광물 등 핵심물자를 공급받는 우리 기업은 동 물자의 생산에 강제노동이 개입되었는지의 여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정부도 외국에서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의 수입제한에 대한 입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