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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키웠는데…쫄병만 보내나" 포스코에 분노한 포항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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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앞에서 포항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포스코그룹 지주회사 포항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앞에서 포항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포스코그룹 지주회사 포항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스코가 다음 달 2일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 출범을 앞두고 ‘복병’을 만났다. 포항시가 포스코홀딩스의 본사를 서울에 두는 방안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면서다. 포항시는 “포항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만큼 모회사 격인 포스코홀딩스 본사를 포항에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는 “지주사는 그룹 차원의 신사업 발굴과 자회사간 시너지 모색이 주업무인 만큼 서울 설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포스코지주 출범 앞두고 갈등 심화

14일 철강업계와 포항시 등에 따르면 포항시가 최근 이장식 부시장을 단장으로 ‘포스코 지주사 전환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면서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와 별개로 ‘포스코 지주사 포항 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서명 운동과 국민청원에 들어간 상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10일 청와대 앞에서 “포스코 지주사 전환이 국가균형 발전에 역행한다”며 1인 시위를 했고, 이튿날엔 김부겸 국무총리를 면담하기도 했다.

포항시는 ▶향후 철강산업 투자 축소 ▶지역 인력 유출 가속화 ▶세수 감소 등을 우려하며 포스코홀딩스의 서울행(行)을 반대하고 있다.

여야 대선후보도 포항시를 거들고 나서면서 논란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포스코 지주사의 서울 설립을 반대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지난달 27일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시장을 만나 “국가기관도 지방으로 가는 마당에 국민기업 포스코가 지주회사를 서울에 설치하는 것은 지방 균형발전에 역행한다”고 말했다.

한국 철강 역사의 산실이자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포항 1고로(高爐ㆍ용광로)가 48년 6개월여 만에 멈춰 섰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29일 경북 포항제철소에서 1고로 종풍식을 가졌다. 종풍(終風)이란 수명이 다한 고로의 불을 끄는 것을 일컫는다. 사진은 1고로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김학동 사장과 포항제철소 제선부 직원들. [연합뉴스]

한국 철강 역사의 산실이자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포항 1고로(高爐ㆍ용광로)가 48년 6개월여 만에 멈춰 섰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29일 경북 포항제철소에서 1고로 종풍식을 가졌다. 종풍(終風)이란 수명이 다한 고로의 불을 끄는 것을 일컫는다. 사진은 1고로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김학동 사장과 포항제철소 제선부 직원들. [연합뉴스]

포스코 “인력 유출, 세수 감소 전혀 없다”

포스코는 포항시의 거센 반발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창립 54년 만에 지주사 체제 전환이라는 ‘큰 산’을 넘었더니 지주사 본사 위치를 두고 파장이 커지고 있어서다. 앞서 포스코는 지난달 2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을 통해 포스코홀딩스 아래 철강·건설·소재 등 사업 자회사를 두는 지주사 체제 전환 안건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포스코홀딩스의 본사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 둔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철강사업 자회사가 되는 포스코 본사는 경북 포항시 괴동동으로 지금과 같다.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도 서울사무소에 있는 그룹 전략본부가 지주사로 분리되는 것일 뿐 달라지는 건 없다”면서 “지주사 본사를 포항에 두자는 것은 명분일 뿐 경제적 효과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포항·광양의 인력 유출이나 지역 세수 감소는 전혀 없다. 포스코의 본사도 여전히 포항”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법인은 세법에 따라 지방소득세를 소재지 지방자치단체에 납부하는데, 지주사가 출범하더라도 공장 등 사업장이 포항에 있는 한 세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포스코는 그동안 공장과 본사는 포항에 두되, 철강 판매 등 사업 편의성을 위해 1995년부터 서울사무소를 운영해왔다. 여기에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비롯해 200여 명이 근무 중이고, 지주사 출범 후 인력이 그대로 이동할 예정이다.

포항시의 서운함 “누가 키웠는데”

하지만 포항시는 “지역거점 성격으로 서울사무소를 두는 것과 지주사 본사를 어디에 둘 것인가 문제는 기업의 상징성 면에서 전혀 다른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포스코의 ‘탈(脫)포항’이 시작됐다는 인식이 거세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포항)은 “1968년 포스코 설립 당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본사를 포항으로 못 박은 후 포항시민에겐 포스코를 키운 지역이란 자부심이 크다”며 “그런데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별다른 소통 없이 지주사를 서울에 설립한다고 하니 서운함이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강덕 시장도 주변에 “포스코가 사령관이 아닌 ‘쫄병’(사업 자회사인 포스코를 가리킴)을 보내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시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그동안 지주사 쪽 관계자와 면담 한 번 이뤄진 적이 없고, 김학동 부회장이 뒤늦게 설명하더라”며 “포스코가 진정성 있는 소통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이강덕 경북 포항시장이 포스코 지주사 본사 서울 설립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포항시]

지난 10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이강덕 경북 포항시장이 포스코 지주사 본사 서울 설립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포항시]

포스코 측은 이에 대해 “지주사 전환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 크고, 지주사 본사도 이를 위한 선택일 뿐인데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 답답하다”며 “포항의 철강산업을 위한 투자와 지원은 변함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대 인하대 교수는 ”기업의 전략적인 의사결정과 지역의 정서적인 문제를 두고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다“면서도 “지주사 출범 목적을 볼 때 포스코 입장에서 서울 설립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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