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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내동 법카 결제' 이래서 쉬웠다…경기도 업무추진비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의전을 둘러싼 의혹이 경기도 법인카드 사용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후보의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도청 비서실 직원이었던 A씨가 이 후보 집으로 배달했다고 주장한 음식 구입비가 경기도의 법인카드로 결제됐다고 주장하면서다. A씨가 주장한 사용처는 경기도의 일부 부서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에서 발견됐다.

이 후보 집으로 간 닭백숙 비용이 경기도청 법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의전 의혹 관련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의전 의혹 관련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1

A씨는 도청 비서실 7급 직원으로 일하던 지난해 4~10월 김씨의 측근이자 도청 총무과 5급 직원인 배모(여)씨 지시에 따라 자신의 개인카드로 음식을 10여차례 산 뒤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김씨 자택으로 배달했다고 주장했다. 본인카드로 계산한 다음 취소하고 경기도청 법인카드로 재결제(개인카드→법인카드) 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가 중앙일보에 제공한 카드 결제내역. 사진 중앙일보 영상 캡처

A씨가 중앙일보에 제공한 카드 결제내역. 사진 중앙일보 영상 캡처

A씨가 공개한 자신의 카드 내역에는 소고기·베트남음식·일식(초밥)·복요리·중식·닭백숙 등 식당 7곳에서 총 11건을 결제한 사실이 나온다. 7만7900~12만원인 11건 결제 금액 총합은 111만8000원이다. 김씨 측에 전해진 음식 비용을 경기도청 법인카드로 재결제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는 게 A씨 측 주장이다. A씨 측이 공개한 배씨와 통화 녹취록(지난해 4월)에는 배씨가 “12만원에 맞춰 계산하라”는 취지로 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4인 모임 기준으로 법인카드 사용 한도에 맞추려 했다는 게 A씨 측의 의심이다.

경기도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을 보면 경기도 기획담당관실은 지난해 4월 14일 업무추진비 11만8000원을 성남시 분당의 한 정육식당에서 결제했는데, A씨는 전날 같은 금액을 이곳에서 긁었다. 비슷한 정황은 노동정책과·자치행정과·공정경제과 등 경기도청의 최소 5개 부서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노동정책과의 경우, 지난해 5월 21일 성남 분당 복요리전문점에서 ‘노사협력 업무추진을 위한 관계자 간담경비’로 12만원 예산을 집행했다. A씨가 사흘 전 같은 금액을 결제했다가 취소한 날이다. A씨는 “재결제한 법인카드는 도청 직원들이 밥 먹고 하는 그런 카드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수사와 감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내용은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타 도(道)와 도지사 업무추진비 비교하니

경기도청 신관. 사진 경기도

경기도청 신관. 사진 경기도

이에 앞서 논란이 된 경기도지사의 업무추진비의 집행 내역 기록이 다른 도지사의 업무추진비에 비해 느슨하게 처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 9개 도지사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을 비교하니 경기지사의 경우만 돈을 쓸 당시 인원수와 결제방법(현금/카드)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도지사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에는 일자·집행내역·사용처·집행대상·금액만 포함됐다. ‘2021-01-06/경기도 제○호 특별생활치료센터 근무자 격려 경비/과일○○/생활치료센터 근무자 ○○○ 등/300,000원’과 같은 식이다.

행정안전부의 업무추진비 관련 훈령.

행정안전부의 업무추진비 관련 훈령.

반면 다른 도는 ‘2021-12-04/19:57/140,000/행사 준비 직원 격려/○○전복/4명/카드’처럼 도지사 업무추진비를 공개할 때 집행 인원과 결제방식을 표기하고 있다.

경남·충남·전남·제주도는 도지사의 업무추진비가 쓰인 시각까지 공개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행정안전부 훈령에 따라 도지사 업무추진비를 공개하고 있다”며 “오래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세밀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부서 평가 때 감점이 들어온다. 이런 평가는 전국이 동일하다”고 전했다.

올해 1월 공표된 행정안전부의 훈령에 따르면 각 지자체는 업무추진비를 공개할 때 사용자·일시·장소·목적·인원·금액·결제방법‧비목 등 항목을 8가지로 구분하도록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기관장 등 업무추진비를 공개할 때 들어가야하는 항목은 지난해에도 기준이 똑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비용을 누가 썼는지(사용자)나 사용 시각(일시)은 공개하지 않는다. 또 집행 내역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 일부 부서나 기관도 있다.

이와 관련해 경제민주주의21 대표 김경율 회계사는 “전국 기초지자체까지 포함하면 수백 수천개 업무추진비 내역이 있을 텐데, 경기도가 가장 느슨하게 운영됐다고 볼 수 있다. 보다 더 공개적이고 엄밀하게 돼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추진비 정보가 부실한 상황에서의 감사는 의미가 없거나 적어도 한계가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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