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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트럭 세운 중국-호주 갈등…공급 쇼크, 올해 물가 흔든다

중앙일보

입력

2020년 10월, 중국 정부는 자국 내 발전소와 제철소에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라고 구두로 통보 했다. 호주가 같은 해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로 중국을 지목하고 국제 조사를 요구한 데 따른 보복 조치였다. 중국과 호주 갈등의 유탄은 엉뚱하게도 한국에 떨어졌다. 이듬해 10월 중국은 수출화물표지 의무화 제도를 시행하면서 요소 수출을 제한했다. 석탄 부족에 전력난이 커지자, 석탄을 원료로 하는 요소 수출까지 막았다. 요소 대부분을 중국에서 들여오던 한국은 요소수 부족에 값이 치솟고 화물차가 멈춰설 위기까지 처했다. 군 수송기까지 띄워 요소수를 공수해야 했다.

코로나로 깨진 공급망, 물가 흔든다 

반도체 수급난에 멈춰선 현대차 아산공장. 지난해 4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고 있는 아산공장 가동을 이틀 동안 중단했다. 연합뉴스

반도체 수급난에 멈춰선 현대차 아산공장. 지난해 4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고 있는 아산공장 가동을 이틀 동안 중단했다. 연합뉴스

재화를 나눠 생산하고, 이를 필요에 따라 교환해 쓰는 국제 분업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돈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들도 이제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게 됐다. 결정적 계기는 재작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다. 전례 없는 보건 위기에 급감했던 산업 수요가 지난해부터 다시 회복하자 재화의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여기에 생산 차질까지 더해지면서 공급난이 더 커졌다.

코로나19로 시작한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올해도 계속된다. 자동차 공장이 지난해부터 본격 생산을 재개하자, 밀렸던 수요가 폭발한 게 화근이었다. 늘어난 수요를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표적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르네사스(지진·화재), NXP(정전), 인피니온(정전), TSMC(정전)가 모두 크고 작은 생산 차질을 겪었다.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 조립·검사 업체가 밀집한 동남아시아에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이들의 공장 가동률도 떨어졌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영향은 일파만파 확산 중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 61.8%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전년보다 10% 이상 생산을 줄였다. 부품 감소는 완성차 생산도 줄여 신차는 물론 중고차 가격도 끌어올렸다. 이 영향에 지난해 11월 미국 중고차 가격은 전년 대비 31.4% 올랐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도 전년 대비 6.8% 상승하며 1982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물가 상승에 놀란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 속도를 당기고 금리 인상에 나섰다.

노동 차질에 물류 가격도 치솟아

미국에서 물류대란이 발생한 가운데 지난해 10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항구 앞바다에 한 컨테이너선이 화물을 하역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FP

미국에서 물류대란이 발생한 가운데 지난해 10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항구 앞바다에 한 컨테이너선이 화물을 하역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FP

재화뿐 아니라 노동력 공급 차질도 물가 상승 원인이 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자국에 돌아갔던 운송 부문 외국인 근로자 복귀가 늦어지면서, 심각한 물류 차질을 빚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지는 지난해 10월 EU 내 부족한 트럭운전사가 약 40만명이라고 보도했다. 미국도 코로나19로 항만 노동자 복귀가 늦어지면서 물류 대란을 겪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사상 처음 5000포인트를 넘은 5046.66을 기록했다. 한국이 자주 이용하는 미주 서안 노선은 컨테이너당 운임이 7681달러로 전년 같은 날 운임(4018달러) 보다 91%가량 올랐다.

커지는 '차이나 리스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CEO 서밋에서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CEO 서밋에서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더 커진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공급 충격 원인이다. 특히 중국은 과거에 저렴한 원자재 및 중간재 공급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급망 불안과 물가 상승의 ‘리스크’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3.7% 중 1%포인트가 중국과 아세안 5개국 소비재 품목 가격 상승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중국의 생산자물가는 전년 대비 13.5% 오르며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첨단 산업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패권 다툼도 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큰 위험이다. 지난해 반도체·2차전지 등 주요 핵심 첨단 부품 공급망 조사에 나선 미국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에 자국 내 생산 시설 확충을 압박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에 적극 대응해야”

공급 충격은 올해를 넘어 향후 글로벌 산업계 최대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생산과 물류 차질이 당분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공급망 차질이 물가 상승으로 직접 연결된다. 이는 소비자 부담은 물론 산업계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망 문제를 산업별 상황에 맞춰 ‘맞춤 대응’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분간 코로나19 발(發) 생산 차질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국 등 특정 국가에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다변화를 통해 불확실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또 미국이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는 첨단 산업은 산업 경쟁력 확대 방편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는 “공급망이 불안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국내서 생산할 순 없다”면서 “가급적 통상 마찰을 줄이면서 특정 국가의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재편이 이뤄지고 있는 일부 핵심 첨단 산업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산업 경쟁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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