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1년 중 가장 밤이 긴 절기인 동지(冬至)를 맞아 오후 5시쯤부터 해가 기울어 사방에 어스름이 내렸다. 어둑어둑한 공원 한 편에는 자그마한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떡과 과일에 소박하게 올라가 있는 제사상에는 영정도 없이 이름만 적힌 위패 10여 개가 놓여졌다.
이들은 올해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노숙인들이다. 유족이 장례를 치러주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이들이다. 반빈곤네트워크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매년 동짓날마다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들을 위해 대신 장례를 치러주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란 가족이나 친척이 없거나 여러 이유로 시신 인수가 거부된 사망자를 가리킨다.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에 따라 지자체장이 일정 기간 매장하거나 화장해 봉인하도록 돼 있다. 이후 무연고 사망자 처리 내용을 공고해야 한다.
대구 지역 무연고 사망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 90명에서 2016년 78명으로 줄었다가 2017년 116명, 2018년 134명, 2019년 153명, 지난해 190명으로 늘어났다.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되는 이유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경우보다 연고자가 있음에도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영장례’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영장례는 시신이 장례의식 없이 ‘처리’되지 않도록 공공이 무연고 사망자와 저소득층에게 검소한 장례의식을 직접 제공하거나 지원하는 제도를 뜻한다. 고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유가족과 지인 등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다.
전국 240여 개 지자체 중 공영장례 제도를 도입한 곳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지자체에서 공영장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관련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8월 30일 기준으로 국가법령정보시스템에서 ‘무연고’ 또는 ‘공영장례’로 검색시 총 63개의 조례가 검색되고 그 중 광역자치단체의 조례는 8개, 기초자치단체의 조례는 56개로 광역·기초 모두 절반이 되지 않는다.
대구에서 공영장례가 지원되는 지자체는 8개 구·군 중 달성군이 유일하다. 달성군이 올해 진행한 3명의 공영장례 사례는 모두 저소득 계층이고 가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였다.
이와 관련해 지난 22일 반빈곤네트워크, 배지숙 대구시의원, 사단법인 자원봉사능력개발원 주최로 ‘지역사회에서 공영장례 제도화의 필요성과 공영장례 제도화 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2018년 3월 마련된 서울시의 공영장례 조례를 모범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전국 광역지자체 중 최초로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한 서울시는 지난해 관련 예산으로 6억8800만원을 책정하고 이 중 667명을 대상으로 약 4억3839만원을 집행했다.
박진옥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서울시는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와 연고자가 시신을 위임한 경우, 기초생활수급자 중 유가족이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장례처리를 할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미성년자 또는 장애인으로만 구성된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하는 등 지원 대상을 넓게 잡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는 공영장례 제도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선애 대구시 어르신복지과장은 “공영장례 도입 시 관련법을 악용해 장례를 치를 능력이 있음에도 공영장례에 의존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일반시민과 형평성을 감안해 조례제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