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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관 잠그고 "군사조치" 경고한 푸틴, 기자들 500명 불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크라이나 문제로 미국, 유럽 등 서방국과 극한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례 기자회견에 나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국가방위 통제센터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확대 간부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공격적인 노선을 철회하지 않으면 군사적 대응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국가방위 통제센터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확대 간부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공격적인 노선을 철회하지 않으면 군사적 대응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P=뉴시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회견은 이날 정오(한국시간 오후 6시) 수도 모스크바에서 내‧외신 기자 507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다. 지난해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탓에 화상으로 이뤄졌지만 올해는 대면으로 진행된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대면 회견을 원했다고 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대면 소통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외신도 참석하기에 미리 질문을 작성할 수 없다. 어떠한 질문도 던질 수 있는 연례적인 권한이 기자들에게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회견은 몇 주간 이어져 온 우크라이나 사태에다 최근 며칠새 러시아가 유럽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관의 일부를 전격 차단한 상황에서 이뤄져 주목된다.

이날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야말-유럽 가스관’ 수송물량 경매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사흘째 폴란드에서 독일로 가는 가스 흐름이 중단됐다. 야말∼유럽 가스관은 러시아로부터 전체 가스 수요의 40% 정도를 공급받는 유럽연합(EU)의 주요 가스 수송로다. 올 들어 600% 이상 급등한 유럽 천연가스값에 또 다른 치명타다. 21일 네덜란드의 천연가스 가상거래소 TTF에선 내년 1월 인도분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한때 역대 최고치인 180유로(1MWh당‧약 24만원)를 찍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측은 가스관 공급 중단이 ‘상업적 이유’라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화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10만 명 이상의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선을 따라 집결하는 등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정치·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을 둘러싸고 촉발된 긴장은 내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로 확대돼 왔다. 반면 러시아는 나토 동진에 따른 위협에 대응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방부 확대 간부회의에서 “서방 동료들의 공격적 노선이 지속되면 적절한 군사·기술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군사적 조치를 시사했다.

러시아-유럽 잇는 가스관 루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러시아-유럽 잇는 가스관 루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유럽은 또 다른 천연가스관이 지나는 길목 벨라루스 문제로도 러시아와 갈등 중이다.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이 폴란드 접경 지역에 난민을 몰아놓고 ‘하이브리드 전쟁’(전통적 무력행사가 아닌 기술·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역량을 동원하는 전쟁)을 벌이는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의혹이다. “우리가 유럽에 난방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하라”고 위협하는 루카셴코 대통령을 푸틴이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바 있다.

이번 회견에서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새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 스트림-2(Nord Stream-2)와 관련돼 푸틴이 어떤 입장을 표할지도 관심을 모은다. 러시아는 지난 9월 완공된 노르트 스트림-2의 최종 사용 승인을 독일의 올라프 숄츠 신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5일 2년 전 베를린에서 발생한 체첸인 살해 사건에 대해 독일 재판부가 이를 ‘러시아 국가에 의한 테러리즘’이라고 규정하면서 양국 모두 상대국의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동유럽권 매체인 라디오프리유럽(RFE)은 알렉세이 나발니를 비롯한 정치적 반대자들과 언론에 대한 탄압 문제와 2024년 러시아 대선 전망 등도 이번 회견의 핵심 의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6월16일(현지시간) 정상 회담이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에 도착해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6월16일(현지시간) 정상 회담이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에 도착해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연례 기자회견은 푸틴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2001년 시작됐다. 임기 중간 총리로 재직했던 시절을 제외하곤 매년 열려 올해로 17번째다. 평균 3시간 이상 이어지는 회견에서 그간 푸틴 대통령은 정치적 현안부터 경제, 본인의 사생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을 표명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할 예정인 주요 외신은 미국의 AP와 워싱턴포스트(WP), 프랑스의 AFP와 르피가로, 르몽드, 독일의 도이체벨레(DW), 영국의 BBC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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