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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도 보유세도 ‘오락가락’…대선앞 당정 혼선, 시장만 '끙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지금까지의 부동산 정책을 일관되고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되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소 게시판.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소 게시판. 연합뉴스

최대 쟁점은 다주택자에게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물리고 있는 조치를 한시적으로 풀어줄지 말지다. 현재 서울 같은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가 집 한 채를 팔면 기본 6~45%에 20%포인트(3주택자 30%포인트) 세율이 더 얹어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 완화”를 주장하고 있고, 정부는 “안 된다”며 맞서는 중이다. 국토보유세(기본소득토지세) 신설 등 부동산 세금 강화를 주장했던 이 후보가 입장을 뒤집으면서 당정 갈등으로 비화하는 모습이다.

이날 홍 부총리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사안은 시장 안정, 정책 일관, 형평 문제 등을 감안, 세제 변경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 12일 이 후보가 “다주택자 매물의 잠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1년 한시적으로 (양도세 중과) 유예를 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한 걸 정면으로 반박했다.

청와대도 가세했다. 이날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는 그대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냐”란 질문에 “지금 상황에선 그렇다”고 답했다. 이 실장은 “(부동산) 시장이 변화하고 있는 민감하고 결정적인 국면이기 때문에 정책의 어떤 일관성도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도 했다.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정책을 기존대로 해나가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지만 이 후보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날 한국여성기자협회 창립 60주년 기념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시적으로 매물을 내놓게 도와주는 게 다주택자에 유익하고 시장에도 유익한 길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지난 21일에도 “(당정 간) 서로 동의가 안 되면 (시행은) 몇 달 후이기 때문에 선거 끝난 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라고 했다. 현 정부가 끝까지 반대한다면 당선되고 양도세 중과 유예를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5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5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날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원내대표는 “다양한 당내 의견을 가진 분들로 구성해서 워킹그룹이 (양도세 중과 유예 여부와 관련한) 당안을 만드는 논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당정 간은 물론 당 내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 대립은 여전히 봉합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 역시 부동산 정책 뒤바꾸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날 홍 부총리는 “보유세 사안의 경우 1주택 보유 서민ㆍ중산층의 세 부담을 일정 부분 완화해주는 보완책을 검토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못 바꾸더라도 재산세ㆍ종합부동산세로 대표되는 보유세 완화는 가능하다는 얘기다.

보유세는 물론 건강보험, 복지 수급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동결하는 걸 여당과 정부는 검토 중이다. 내년 공시가격이 올라가더라도 보유세 등을 산정할 땐 올해 공시가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과세표준 산정 때 쓰는 공정시장가액 비율 동결도 논의 선상에 올랐다. 예컨대 종부세 계산시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내년 100%로 올리지 않고 올해 수준인 95%로 묶어두는 방향이다.

내년 대선 일정이 가까워져 올수록 악화하는 부동산 여론에 여당은 ▶세율 인상 ▶공시가 현실화 ▶다주택 중과로 대표되는 ‘문재인표’ 부동산 세제를 흔들고 있다. 이런 다급한 움직임에도 시장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최근 가중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 불안만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22일 기준 서울 지역 아파트 매물은 전ㆍ월세와 매매를 합쳐 9만8602건으로 한 달 사이 5.7% 늘었다. 불과 두 달 전인 올해 10월 5만 건 수준에 불과했던 매물 수가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상승 우려, 늘어난 세금 부담 등 요인이 맞물리면서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양도세를 다시 완화한다고 하면 오히려 매물이 다시 잠기는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소 게시판.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소 게시판. 연합뉴스

당정이 검토 중인 공시가 동결 등을 통한 1주택자 보유세 완화 방안도 마찬가지다. 집값 급등으로 공시가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데다, 2~3년 후 오른 공시가가 한꺼번에 반영될 때 ‘세금 폭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교수는 “조세는 중장기 계획에 따라 원칙에 맞춰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맞는데, 경제 행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금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표를 얻겠다고 일관성 없이 뒤집고 바꾸면 부동산 시장 불안만 더 부추기는 결과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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