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 '이념 좌표' 이동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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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의 추가 우에서 (좌로) 이동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8일 이번 중간선거 결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민주당이 12년 만에 의회를 장악함에 따라 보수 쪽으로 기울던 미국의 정치.사회의 흐름에 제동이 걸렸다는 얘기다.

소수당으로 전락한 공화당은 이제 보수적인 정책의 입법화가 어렵게 됐다. 반면 민주당은 공화당의 벽에 막혀 번번이 휴지통에 버려야 했던 정책들을 다시 꺼내들 수 있게 됐다. 최저임금 인상,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 등의 공약을 실행에 옮기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차기 하원의장에 내정된 낸시 펠로시 민주당 대표는 여성의 낙태권에 제약을 가하는 걸 단호히 반대한다. 총기 사용은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당 일각에선 그를 '광적인 진보의 화신'이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다. 그런 그가 내년 1월 새롭게 구성될 하원을 이끌게 되는 만큼 미국엔 진보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균형추가 한쪽으로 확 기울 것이라고 예단하긴 이르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의 압승은 과거 공화당 우세지역에서 중도성향의 민주당 후보가 대거 당선된 결과이므로 민주당의 정책이 과연 얼마나 좌로 갈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과거 두 차례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던 인디애나 등 공화당 지역에서 승리한 민주당 하원 의원 당선자들이 30여 명에 이르고, 이들은 2008년 선거를 염두에 둘 것이므로 중도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공화당에선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 경질과 같이 강성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퇴조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과 타협하겠다고 한 만큼 진보보다 중도의 바람이 불 수도 있다. 펠로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도 의회 운영의 책임과 국민의 기대를 의식할 것이므로 너무 좌로 가진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AP통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보도하면서 "공화당 우세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당선된 것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공화당의 부패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며 "이들의 3분의1이 민주당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보수가 약해진 게 아니라 공화당이 보수층을 견인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안심할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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