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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에 꽃 피나 … '서봉수 4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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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준결승전에서 맞붙게 될 창하오 9단과 서봉수 9단, 백홍석 5단과 이창호 9단이 악수를 나누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이버오로 제공]

"천운이 따라준다면 40년 바둑 인생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다."

중국의 왕야오(王堯) 6단을 흑 불계로 제압하고 세계 4강에 오른 서봉수 9단이 이렇게 소감을 토해냈다. 마지막 1분 초읽기에 몰린 채 사활이 얽힌 격렬한 종반전을 치르며 서 9단은 한때 크게 흔들렸으나 오히려 막판 깨끗한 결정타를 날리는 특유의 승부기질을 보여줬다.

'잡초류'의 기풍과 실전적인'토종바둑'으로 독특한 바둑세계를 구축했던 서 9단이 세계대회에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것은 93년 응씨배였다. 그로부터 13년. 황혼길에 선 54세의 서 9단이 다시 한번 영광을 차지하다면 이는 그야말로 기적을 이루는 것이다.

대국장인 유성 삼성화재 연수원에 모인 수많은 젊은 기사가 서 9단의 지칠 줄 모르는 투혼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서 9단은 중국이 자랑하는 신예 3명을 잇따라 격파함으로써 '고목나무엔 꽃이 피지 않는다'는 승부세계의 불문율을 깨뜨리며 또하나의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20세의 신예 백홍석 5단도 중국의 위빈(兪斌) 9단을 10집반의 대차로 꺾고 세계 4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 최대 복병으로 16강전에서 전기 우승자 뤄시허(羅洗河) 9단을 꺾으며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백홍석 5단은 "초읽기를 피해 전투바둑으로 이끈 전략이 통했다. 생애 처음 맞이한 절호의 기회를 헛되이 날려보내지 않겠다"며 이제는 겸손함을 접고 우승에 대한 집념을 숨기지 않았다. 최근 급상승세를 타며 패기 넘친 행마를 보여주고 있는 백홍석 5단은 SK 가스배 신예10걸전 결승에도 올라 이영구 5단과 우승컵을 놓고 다음주 13일 맞붙는다.

우승후보 이창호 9단도 16강전에서 유창혁 9단을 누르고 올라온 중국의 조선족 최강자 박문요 5단을 흑 불계로 꺾고 역시 4강에 올랐다. 이창호는 올해 각종 세계대회에서 부진을 거듭해 단 한 번도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바람에 수많은 바둑팬으로 하여금 '이창호 시대는 저물었는가'하고 반문하게 만들었다. 이 9단은 그러나 올해 마지막 세계무대라 할 11회 삼성화재배 세계오픈에서 세계 최강자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최철한 9단은 응씨배 결승에서 분루를 삼켰던 천적 창하오(常昊) 9단에게 3집반 차로 패배해 또 다시 세계무대 등정에 실패했다.

준결승전은 다음달 5~8일까지 유성에서 열린다. 대진은 이창호 9단 대 백홍석 5단, 서봉수 9단 대 창하오 9단. 한국 3명 대 중국 1명의 구도라서 올해 중국바둑에 계속해 우승을 내주며 세계 최강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한국 바둑이 삼성화재배를 통해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승상금은 2억원.

유성=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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