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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새 역사 쓴 김남욱·김진 "월드컵 진출은 성탄 선물, 새해 소망은 월드컵 첫 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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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일본을 꺾고 17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럭비 7인제 국가대표 김진(왼쪽)과 김남욱. 다음 목표는 월드컵 사상 첫 승리다. 정준희 기자

일본을 꺾고 17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럭비 7인제 국가대표 김진(왼쪽)과 김남욱. 다음 목표는 월드컵 사상 첫 승리다. 정준희 기자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2021 아시아 럭비 세븐스(7인제) 시리즈 겸 2022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 이기고 17년 만 본선 진출 #남욱 "진이는 김민재 같은 센터백" #진 "남욱형은 손흥민 같은 공격수"

한일전으로 치러지는 준결승을 앞두고 많은 팬은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다. 한국 남자 럭비 7인제 대표팀은 지난 7월 도쿄올림픽 최하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19-31로 패한 바 있다. 게다가 일본은 디펜딩 챔피언이다.

한국은 예상을 뒤엎고 일본을 21-14로 이겼다. 올림픽 패배 설욕은 물론 우승(홍콩)·준우승(한국) 팀에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건 2005년 이후 17년 만이다. 한일전 승리의 주역 김남욱(31)과 안드레 진(30·한국명 김진)을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김남욱은 “올림픽에서 패한 데 이어 월드컵 출전권까지 일본에 내주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무조건 이겨야 했다. 목숨 걸고 뛰었는데, 완승하니 기쁨이 두 배”라며 웃었다. 그는 일본과 4강전 시작 1분 20초 만에 선제 트라이(득점)로 기선을 제압했고, 7-7로 맞선 전반 추가 시간에 다시 트라이를 성공했다.

김진(왼쪽)의 플레이를 축구에 빗대면 김민재 같은 수비수, 김남욱은 손흥민이다. 정준희 기자

김진(왼쪽)의 플레이를 축구에 빗대면 김민재 같은 수비수, 김남욱은 손흥민이다. 정준희 기자

그러나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 축구장 면적 경기장에서 공을 들고 상대 골 지점까지 돌파해 트라이하는 종목인 럭비 7인제는 전·후반 7분씩에 휴식 1분이다. 활동량이 워낙 많고, 몸싸움이 거칠어서 경기 시간이 짧다. 득점해도 곧바로 경기가 재개된다.

김남욱은 트라이를 할 수 있었던 건 김진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유럽 선수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 체격(1m95㎝·100㎏)의 김진이 있어서 동료들에게 찬스가 생긴다. 쉴 새 없이 뛰면서 상대를 막아내는 그는 축구에 빗대면 국가대표 센터백 김민재 같은 존재”라고 칭찬했다.

김진은 “남욱이 형이야말로 손흥민 같은 특급 공격수다. 폭발적인 스피드로 볼을 운반하고 결정적 순간엔 득점까지 한다. 아시아에선 막기 어렵다”며 “남욱이 형 덕분에 한국에 적응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진은 미국 럭비 청소년 대표 출신이다. 홍콩의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2015년 한국 럭비 국가대표가 됐다. 그때 만난 김남욱과 대표팀에서 7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하루 세 차례 지옥 훈련 때도 늘 함께였다. 김남욱은 “김진과 친형제 같은 사이다. 눈빛만 봐도 다음 동작을 안다”고 자랑했다.

김진은 도쿄올림픽 이후 JTBC 축구 예능 프로 ‘뭉쳐야 찬다2’의 고정 멤버가 됐다. 다양한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여 축구 동호인 전국 대회 우승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축구 레전드 안정환이 감독, 이동국이 코치를 맡았다.

예능 프로에 출연 중인 김진(왼쪽)은 럭비 대중화가 목표다. 김남욱도 돕겠다고 했다. 정준희 기자

예능 프로에 출연 중인 김진(왼쪽)은 럭비 대중화가 목표다. 김남욱도 돕겠다고 했다. 정준희 기자

김진은 “그전엔 ‘영어 강사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요즘엔 ‘축구선수 안드레’로 불린다. 축구를 잘한다는 뜻이어서 기분 좋으면서도 방송을 통해 비인기 종목인 럭비를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김남욱은 “김진이 방송을 프로처럼 잘하더라. 실력을 보니 축구로 전향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럭비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놀렸다.

잠시 휴식을 취한 김남욱과 김진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월드컵 대비에 돌입한다. 24개국이 참가하는 남아공 월드컵은 내년 9월 케이프타운에서 열린다. 둘은 역사적인 첫 승을 합작하는 게 꿈이다. 한국은 2005년 홍콩 대회를 최하위(공동 21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남욱은 “월드컵 진출이라는 최고의 성탄 선물은 받았다. 다음 목표는 한국 럭비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안정환 감독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을지 누가 알았나. 우리도 할 수 있다. 나중에 손자들에게 ‘할아버지가 럭비 레전드’라고 자랑하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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